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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Cine

[영화] Conversations with Other Women, 2005

결혼 피로연에서 들러리를 섰던 여자는 담배를 피울 곳을 찾고 있고 여자를 주의깊게 보던 남자는 '작업'성 말들을 건네기 시작한다. 약간은 냉소적으로 대꾸를 하는 여자는 대화 자체를 즐기는 듯 하다. 대화를 한창 하다가 결혼하는 신부가 남자의 여동생임이 밝혀지고 이어서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임이 드러난다. 남자와 여자는 오래 전에 이혼한 커플이었고 여자는 남자를 떠나 런던에서 심장전문의와 새 삶을 시작한 것이었다.

 

남자는 결혼식에 여자가 오리라는 기대감과 만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비춘다. 여자는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무심함으로 대화와 하루 밤을 보내고 유유히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사라진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화는 훌륭하다. 내내 두 개의 화면을 겹쳐보이게 하는 촬영 기법은 때로는 과거를 회상하는 데에, 때로는 남녀의 속내를 드러내는 데에 유효적절하게 사용되며 두 배우의 불안해보이는 대화와 표정 연기도 거의 절정 수준이다. (사실 이 영화는 팀 버튼의 아내인 헬레나 본햄 카터 때문에 본 것이다.)

 

하지만, 결말이 정작 아쉬운 부분이다. 여자는 흔들리던 마음과는 달리 정신 없이 택시에 몸을 싣고 공항으로 간다. 처음부터 여자는 하루 밤을 전 남편과 보낼 생각 외에 다른 '기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헤어짐과 혼자 런던에서 씩씩하게 살았을 그녀의 배경에 대한 어떠한 조명도 없이 남자-전남편의 작업에 흔쾌히 동행했다가 몇 시간 만에 마음을 정리하고 어떤 여운도 없이 돌아가는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여유조차 영화는 허락하질 않는 것이 아쉽다.

 

감정의 변화를 행동으로 예측하기 어려워서, 보는 관객들조차 안타깝고 답답하게 만드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아오이'나, 9년 만의 만남에서의 심리적인 묘사를 대화로 훌륭하게 풀어낸 [비 포 선셋]의 '셀린느'처럼, 영화 속 여자 주인공도 보여주고 싶은 내면의 갈등이 있지 않았을까. 갑자기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에 당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