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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 Libris

옥성호, 최초로 아버지 옥한흠을 말하다 (2010. 9. 19)

어느 주일 낮
제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주일 낮이었습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응접실에 있던 내게 말을 건 것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왜 이런거지?” 아버지가 내뱉은 의문문의 문장에 대답할지 말아야 할지를 잠시 망설였던 저는 조용히 되물었습니다.“아빠, 뭐가요?” 아마도 그 날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었나 봅니다. 비록 그 상대가 날마다 공부는 뒷전에 내팽개치고 놀기에 바쁜 아들이었을망정 말입니다.“어…그게 말이야…” 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성호야 내가 한참을 생각해도 잘 모르겠구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사람들을 교회에 많이 보내주시는지 말이야. 오늘 주일 예배 숫자가 5천명이 넘었어. 오늘 예배 후 차를 타는 대신 집까지 천천히 걸어오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도 정말 알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나 같은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까지 이렇게 쏟아주시는 그 뜻을 도통 알 수가 없어.” '아니,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거지…별 이상한 걸 가지고 다 고민이네….'아버지의 불평 아닌 불평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 저는 내려놓았던 사과를 다시 집으며 보고 있던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든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단 몇 십 초에 불과했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까지 이렇게 생생하게 제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 날 제가 느꼈던 바로 그 ‘이상함’ 때문입니다. 좋아해야 할 일을 놓고 좋아하는 대신 고민하고 당황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준 의아함 때문입니다. 비록 그 날 이후 아버지는 늘어나는 사람들이 주는 고민을 우리 가족들에게 드러내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아버지의 그 당혹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지향하고 붙잡은 자신의 교회론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의 현실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론
아마도 많은 분들은 아직도 3년 전 상암 운동장에서 열린 평양 부흥 100주년 기념 예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날 설교에서 절규에 가까운 회개의 메시지를 내뿜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혹자는 도대체 옥한흠 목사는 뭘 그렇게 잘못한게 많아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해도 모자란 부흥 100주년에 저런 찬물 끼얹는 설교를 할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날 하나님께서 100년 전 부어주신 그 부흥의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 대신 하나님 앞에 회개의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만이 갖고 있던 바로 이 오랜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로서 교회는 커졌고 사람들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고 붙잡고 가던 '교회론'에 걸맞는 결과를 교회 속에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그만큼 아버지에게 '교회론'은 사랑의교회를 목회하는 내내 생명과도 같이 붙잡고 있던 가치였습니다. 아버지는 '교회론'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저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목회자와 교회가 사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교회론이 왜 생명과 같으냐고 물으면 목회가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들을 영적으로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판가름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이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목회자는 진정한 목회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목회자의 생명을 결정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한 교회론이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을 때 그 사실은 아버지에게 말못할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현실이 충돌할 때 고민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토록 붙잡고 있던 그의 교회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제가 관심을 갖는 교회론은 어떤 영역이나 분야가 아니고, 교회의 본질과 연결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즉, 교회의 주체가 누군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역자인가 아니면 평신도인가?저는 교회의 주체가 평신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했고, 교회 주체인 평신도를 위해 목회자가 어떤 사역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성도들에게 주어진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소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목회자로서 어떻게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지 등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저의 교회론의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전통 목회는 평신도가 동원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평신도를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주체, 동역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붙잡은 교회론의 핵심은 교회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주체에 대한 재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어떻게 볼 때 목회자를 위해 존재했다면 이제 교회는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를 위해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그 말씀에 의지해 그리스도를 닮은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목사와 교사를 교회에 보내셨으며 이제 교회는 기존의 예배 공동체와 선교 공동체로서의 정체성 외에 훈련 공동체로서의 또 하나의 얼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평신도를 명실상부한 교회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훈련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교회론이 꽃피기 위해 필연적으로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제자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도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교회의 주체이자 주인이 평신도라는 사실과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것이 왜 서로 충돌할까요? 도리어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교회의 주체되는 평신도들이 늘어나니까 말입니다. 주체들이 늘어나면 교회도 더 강성해지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교회론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인 제자도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교회론을 실현하는 실천적 방안으로 제자도를 정리하며 그 내용의 핵심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한 사람 철학
정말로 아버지는 한 사람을 붙잡고 사역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래 전 성도교회 대학부를 맡았을 때에도 당시 대학부에 남아있던 단 한 명의 학생, 지금의 방선기 목사님을 붙잡고 대학부를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시작할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이 볼 때 무식하고 답답한 방식인 소그룹 훈련에 매달려 매일을 씨름했습니다.

 

밤마다 제자훈련에 치중하다보니 새벽에 일어날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많은 분들은 새벽기도를 인도하지 않는 이상한 목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커지며 더 이상 소그룹을 직접 인도할 수 없게된 이후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제자훈련 교재 집필에 진액을 쏟았습니다. 아버지에게 한 사람은 교회 전체였고 교회는 바로 한 사람이었습니다.

 

 

2. 섬기는 리더쉽
교회의 주체를 평신도로 이해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그의 교회론을 근거할 때 아버지에게 목사가 평신도를 섬겨야 하는 존재임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혹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섬길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늘 같은 주인의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를 생각할 때 가르치는 자가 사실상은 섬기고 있다는 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그가 지향하는 예수님을 닮은 제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남을 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섬김의 모델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비롯한 목회자들에게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동시에 성도의 종이다’라는 신념 아래 그는 자주 '이끌면서 섬기고 섬기며 이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이며 주체된 그들을 바로 섬기며 이끌기 위해 목회자는 한 사람 철학으로 무장되어야 한다고 확신한 아버지에게 너무도 커버린 교회는 한 사람 철학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구조, 제대로 평신도를 섬기기 힘든 구조의 그 무엇으로 다가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 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교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2만 3천명, 전체 등록 교인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지금 사랑의 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아버지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정말로 내가 내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한 영혼에 최선을 다해 집중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가 과연 이렇게 클 수 있었을까? 아니, 결론적으로 이렇게 커진 상태에서 이제 더 이상 한 사람 철학을 바탕으로 한 나의 교회론 자체가 아예 가능이나 한 얘기일까?"


은혜 또 은혜
아버지의 사랑의교회 목회 내내 이런 고민 속에서 그가 하나의 돌파구로 붙잡은 길은 그냥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목숨을 건 설교준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나날이 늘어나는 성도가 주는 내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길, 그나마 많은 성도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설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004년 아버지가 조기 은퇴했을 때 많은 언론들은 모범적인 사역 계승이자 살신성인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라며 아버지를 일제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아들로서 볼 때 아버지가 조기은퇴를 결심한 진짜 이유는 89년에 잃은 건강이 주는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매주 피말리는 설교준비가 영적 중압감을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설교는 십자가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양심을 놓고 셈해야 할 몫이기도 했습니다.

 

" 흔히들 나를 보고 매주마다 수만 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느냐고 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설교가 나에게 보람은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교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설교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숨은 군중들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강대상에 서고 싶지 않을 때가 없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가 매주 다가오는 설교의 중압감 속에서 붙잡은 유일한 것은 다름아닌 더 큰 은혜에의 갈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역 전체를 꿰뚫는 이론적 개념으로서의 토대가 그의 교회론이라고 한다면 목사 옥한흠이라는 한 인간의 신앙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는 다름아닌 은혜에의 갈망입니다. 아버지는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자신이 맛본 특별한 은혜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내가 은혜에 취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은혜는 식지 않고 지속되었다. 성경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진하게 가슴을 울리는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지, 나는 이 기간에 넘치도록 맛보면서 살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이 강렬한 은혜의 맛이 서서히 식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그 은혜의 경지를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때에 받은 은혜가 내 한평생의 신앙생활과 목회의 질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받은 은혜의 질이 목회의 질을 결정한다는 아버지의 믿음은 그의 목회 내내 더 큰 은혜에의 사모함으로 드러났습니다. 무엇보다 목회자로서 받는 은혜의 깊이가 성도들의 신앙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그의 생각은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은혜에 대한 갈망이 간절한만큼 설교는 아버지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주 설교를 놓고 그가 치르는 영적 전투는 피를 말리는 치열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단 한 번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은퇴할 당시 어느 방송에서 고백했듯이 자신의 부족한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설교를 통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데 대하여 성도들에게 미안해 하고 하나님 앞에 송구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그렇게 무력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에 갈급한 아버지의 그 약함을 통해 성령께서 더 강하게 그의 설교를 통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설교학회장이며 서울신대 설교학 교수인 정인교 목사는 아버지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 우선 주목할 것은 설교를 대하는 옥목사의 진지성이다. 옥 목사는 자신이 설교를 준비하는 작업을 ‘십자가’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란 벗어버리고 싶은 부담을 의미한다. 그가 설교를 이토록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전하는 설교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바른 말씀인가'에 대한 근본 질문에서 오는 고통이다. 옥목사는 바로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설교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고민과 고통이 그의 설교를 균형 잡힌 모범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 그의 설교에 묻어나는 설교자의 고민 그리고 말씀과의 치열한 전투 흔적이라는 진지성은 옥목사 설교를 설교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중략….. 마지막으로 옥 목사에게서 보여지는 설교자로서의 특징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설교자로서의 기품이다. 이 기품이란 본질적으로 그의 신앙적 인격과 투명한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에게서 배어나오는 진지함과 장중함은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신’으로 그를 각인시킨다. 이것은 최근 강단을 희극화시키고 가볍게 만드는 일부 ‘코미디형 설교자’와는 대별되는 모습이다. 그는 강단에서 결코 자신을 과장하지 않을 뿐더러 회중의 귀를 즐겁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회중을 몰아붙이고 성도의 치부를 드러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접근은 일부 과도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말씀 전달자로서의 설교자에 대한 자각과 온전한 삶과 균형 잡힌 인격을 모토로 하는 것이다."

 

 

고독
아버지는 목사로서도 또 인간으로서도 고독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라는 짐을 숙명적으로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은혜에 대한 갈급함은 그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고독은 아버지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지 못해 그 큰 은혜를 사람에서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 여유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무겁고 크며 거룩한 존재일수록 설교는 그에게 엄중하며 생명을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항상 자신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인간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찾은 답이 어떤 의미로 아버지에게는 '고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이런 목회자의 고독을 '날마다 죽는 목회자'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이 고독의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오늘의 목회자들을 보며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교회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대안은 목회자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지만 목회자도 사람이니까 잘못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전부 외형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교회가 커지만 목회자가 대단한 인물로 부각되고, 그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게 됩니다. 사방에서 끌어당깁니다. 적당히 거절하지 못하면 정신없이 자기 과시하는 데 애쓰게 됩니다. 양떼를 돌보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고 설교 준비를 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생명을 짜는 설교 준비가 아닌 설교를 위한 설교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없어지고 건물만 남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설교준비에 죽어야 하고, 밖으로부터의 유혹, 권력으로부터의 유혹, 인기에의 유혹을 철저히 끊고 자기가 죽을 때, 교인들의 숫자가 많아져도 그것을 커버할 수 있는 만큼의 큰 품이 생기게 됩니다. 그 밑에서 공부하는 부교역자도 다 본받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지 않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좀 더 사람들과 어울리고 인생의 다양한 재미들을 즐기며 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에게 육체의 병이라는 가시를 통해 그가 더욱 더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을 향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고독과 병을 보며 저는 약함 가운데 능력이 되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질병이 그의 설교를 듣는 누군가에게 치료의 원인이 되었고 그의 고독이 누군가에게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쁨의 원천이 되었음을 잘 알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미안함
인공 호흡기를 낀 아버지는 어제 간신히 손에 들린 펜으로 이렇게 쓰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버지의 진심은 이것이었을 듯 합니다.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더 넓게 보여주지 못하는 설교자로서의 미안함 뿐 아니라 자신의 교회론과는 달리 너무도 커 버린 교회 때문에 또한 성도들에게 미안해 했습니다. 아버지의 이 미안함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의교회 건축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론에 걸맞게 좀 더 제대로 목회했다면 결코 더 큰 교회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더 큰 교회 건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랬기에 항상 불편한 환경 가운데서 예배 드리는 성도들을 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데에는 분명 그 분의 거룩한 뜻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 확신 속에서 전체 성도가 다 교회 건축을 찬성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그가 생명을 걸고 함께 동역한 교회의 주인인 사랑의교회 성도들의 판단을 신뢰했습니다.

 

 

주일 오후 중환자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버지는 폐를 대신해 호흡하는 인공호흡기를 꽂고 24시간 꺼지지 않는 중환자실의 형광등을 바라보며 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암투병을 기록한 그녀의 책에서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라고 썼습니다. 지금 아버지에게 그 한 순간 조차도 얼마나 길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자신이 무슨 고통을 제대로 알았다고 '고통에는 뜻이 있다'라는 책을 냈을까라고 하며 자조의 말을 내뱉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말은 안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신다면 이제는 고통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잘 전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분명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지난 몇 년 간의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결코 그렇게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70년이 넘는 평생동안 당신이 하나님으로 받은 축복과 은혜가 이토록 넘치는 데 지금 이 세상에서 좀 더 살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너무도 염치 없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좀 더 시키실 일이 남아있으면 분명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실 것이고 그게 아니면 가장 좋은 시간에 자신을 데려가실 것이라고요. 아버지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 하나님은 이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유독 아버지의 설교들 결론이 '하나님을 사랑하라'가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 모든 문제의 답이며 또한 인생의 본질이니까요.

 

저는 지금 저 중환자실에 홀로 누워 있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전하고 싶다면 그 메세지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작년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목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회한을 피력했습니다.

" 사랑의교회는 양적으로 너무 비대해져 버렸습니다. 교회론대로 목회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즉, 사랑의교회라는 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목회를 했어야 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제 사랑의교회라는 한 교회가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가 커가도록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크게는 사랑의교회와 제자훈련의 철학을 함께 나누는 모든 교회들 그리고 작게는 저희 가족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교회 속에 파고든 세속주의를 향해 경계하며 지금 교회는 침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 본질이 파괴되는 문제 앞에 서 있다고 통탄했습니다.

 

" 교회가 처한 가장 심각한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속주의다. 세상적인 가치를 거의 다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입장에서 수용을 하되, 성경적으로 적당히 포장해서 수용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한국 교회를 생각하며 세속주의가 이토록 교회 깊이 파고든 오늘날 유일한 치료약은 평신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제자로 자라나고 목회자는 한 명의 평신도를 위해 죽을 수 있는 한 사람 철학으로 거듭나는 것 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목회에 '엇박자'가 발생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그 '엇박자'를 통해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기막힌 '화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교회를 통해 만들어내셨던 아름다운 화음을 통해 영광 받으셨듯이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도 싸우고 있는 '암'이라는 고통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소원합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든 성도들에게 가족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다시 한번 설교자 옥한흠을 강단에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옥성호

 

**기사출처: 이태형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부 부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