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열어보면 '주말 특가', '반값 할인', '단칼의 왕', '생일 쿠폰' 등등 각종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로부터 할인의 유혹이 엄청나다. 나도 모르게 착한 가격에 솔깃하여 계획에도 없던 웹서핑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노예라기보다는 '할인 주의'의 노예가 아닌가 하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말처럼 할인이라는 글자만 봐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동공이 커지고 나도 모르게 슬쩍 이미지에 마우스를 가져간다. 조건반사? 필요 없는 물건도 50% 싸다면 다시 쳐다본다. 딱히 필요가 없던 물건도 사야 할 논리를 금세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대로 사야 할 물건이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단돈 몇 백 원이라도 싼 곳을 찾아 오래도록 인터넷 세상을 헤맨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할인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꽤나 오랜 시간을 소비한다. 그 노력으로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했다면 아마도 몇 백 원 이상을 벌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할인 주의의 노예가 된 나는, 자주 최저가 혜택을 주는 시장을 찾아 헤매는 외로운 소비자가 된다. 아니, 보다 적극적으로 마치 그 행위 자체를 게임하듯 즐긴다.
어떤 면에서 '할인 주의'는 한 인간의 생산성을 저하시킨다. 2만 원의 10%면 2천 원이지만, 그 10% 할인이라는 혜택이 2천 원을 싸게 샀다는 현실보다 더 큰 만족을 주기도 한다. 반대로 몇 천 원만 비싸게 사도 분해서 그날 밤 잠을 설친다. 뭔가를 생산해내는 것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소비의 주변 활동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는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할인 주의의 악순환 구조다. 과거엔 '나 어제 이거 샀다'가 자본주의 시장의 제1원칙이었다면, 제2원칙 '이거 얼마에 샀게?"가 1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둔갑했다. 이제는 할인 구매 성과에서조차 '노오력'하여 자신의 능력과 존재감을 증명해야 하는 건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말은 꽤나 무겁게 들리지만, 가깝게는 피부로 와 닿는 이런 가치관들을 곱씹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몇 백 원을 깎기 위해 나는 왜 이리도 부단히 애를 쓰는가'에서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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