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저녁 늦게 온다. 낮 시간에는 해결이 안 되는 거다. 솔직히 택배가 밤에 오면 기뻤다. 어차피 저녁 늦게 퇴근하고 집에 와서 조금만 기다리면 전날 질렀던 물건을 갖다 주니 희희낙락이다. 요즘은 토요일 밤, 일요일까지도 간간이 택배가 온다.
경쟁이 치열한 이 나라에서 내 상품을 가져다 주기 위해 누구네 아빠는 밤늦게까지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사실 같은 직장인 처지로 보면, 밤 시간 배송이 야근임을 직시해야 하는데 그게 잘 연결이 안 된다. 택배뿐인가. 서비스 직종의 많은 직장인들이 늦은 시간까지 가정집을 다니며 인터넷을 설치하고 전자제품 수리를 한다.
'저녁이 있는 삶'
아빠를 부르며 달려 나오는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주고, 함께 밥을 먹고 침대에 같이 누워 동화책을 읽어주는 평범한 가정. 흥미롭게도 모든 이들이 그 평범한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총알배송이니 당일 수리니 하는 독약 같은 '마법'의 현현에 열광하고, 자주 그것을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라고 치부하기까지 한다.
내가 편하면 행복한 우리들의 삶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하고 있다. 나 또한 불특정 소비자로 통칭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불철주야 일한다. '내 저녁'을 버리는 것이 이 사회의 경쟁력이 되었다.
'총알배송이고 나발이고.'
답답한 마음에 그런 상상을 했다. 매장에서, 식당에서 누군가가 해주려는 과도한 서비스에 눈살을 찌푸리고 도리어 화를 낸다. 당일 배송을 거절한다. 야간 서비스, 24시간 영업점을 기피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어쩌다 이 사회는 '타인의 저녁'을 서로가 배려해주는 상상을 할 정도로 각박한 곳이 된 걸까. 어쩌다가 '나의 저녁'과 '타인의 저녁'을 배려해주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무심해진 걸까.
30분 이내에 음식을 배달해야 하는 청소년 알바생의 스쿠터들이 도로에서 부딪혀 나뒹굴고 누군가가 다치거나 자살을 해도, '빠름빠름' 노래할 수 있는 너와 나의 멘탈. 자국민이 힘들어하면 타국민을 시켜서라도 동일한 성과를 내고자 하는 글로벌 경쟁사회.
한때 이 모두가 사실 책으로만 읽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머릿속에서, 형이상학적 개념 속에서만 좌파 행세를 해도 티가 안 나던 과거와 달리, 이제 이 거대담론들은 점점 내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와서는 하루하루 대면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소외시킨다. 그럴수록 세상은 섬세했던 내 양심, 내 정서가 더 무뎌져야 한다고 속삭인다.
오늘도 나는 내 택배가 오고 있나 인터넷을 검색한다. 어떤 사람이 내 택배를 배송하는지, 어디쯤 내 택배가 오고 있는지, 그 사람의 휴대폰 번호가 몇 번인지. 나는 다 알고 있다. 세상 정말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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