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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Notes

문화비평 (2020. 4)

까마득하긴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음악, 영화평을 주고 받다보면 항상 다투게 되는 친구가 있었다. 대체로 내가 좋아하던 국내 뮤지션이야기를 꺼내면(그는 국내 뮤지션 대부분을 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음반은 쓰레기라며 한 두 마디로 내 기호를 제압하곤 했다. 마이클 잭슨 스타일을 모방한다, 킹 크림슨 음악 흉내를 냈다, 창법이 과장됐다는 등등... 촌철이라면 촌철이지만, 섬세하게 들아가본다면 내가 언급한 음악인 중에는 그런 인상 비평이 적절하지 않게 음악 영역이 넓은 이들도 있었고, 더 나아가 문화 컨텐츠에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불호를 혐오스럽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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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80년대 운동권 글쟁이들이 정권을 비판하면 잡혀가던 그 시절에 상당수는 록, 헤비메탈이나 비헐리우드 영화 같은 문화컨텐츠에 고급 비평을 해대기 시작했고, 그런 비평 양식의 퀄리티가 높아지면서 내가 좋아한 영화인데 정작 나는 그 영화의 비평을 독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런 분위기가 대중이 소비하던 하위문화인 '바보상자'(TV) 시간떼우기류로 치부하던 '비디오보기', '음악테입 모으기'를 고상한 중년층의 취미로 격상시킨 느낌마저도 있으니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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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부터는 진보 비평이 꽃피던 시절이라 상당히 많은 이들이 진중권식 논쟁의 흐름을 즐겼다. 당연히 나도 그런 논쟁이나 글쓰기에 매료되었고, 한동안은 그 스타일을 체화시키고 싶어했다. 하지만 당시에조차 나는 문화컨텐츠에 그런 냉소적이고 과격한 스타일을 접목시켰을 때 그 자극적인 문체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번 내 비평글을 자족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번 것은 좀 아쉬웠다' 이상의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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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넘어 근 10년간 페미니즘이 담론의 여러 영역을 바꿔놓았다. 그 흐름 속에서 이제 조금씩 확신이 드는 건, '칼보다 강한 펜'의 날카로움이라는 비평 스타일도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성이 만들어낸 무자비함의 한 단면이 아니겠냐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창조물을 부수고 때리고, 짓밟고 난도질하는 과격함이 물리적이지 않으므로 허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남성성의 역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조금씩 과격한 혐오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도 컨텐츠를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매우 풍성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래저래 배우는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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