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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emplar solving (2012. 7. 20)

조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난놈'이 혼자 달려가는 방법. 빌 게이츠가 말하듯 똑똑한 한 사람이 그룹원 다수를 이끌어주는 식, 천재 직원 한 명이 기업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이다. 전략적으로 본다면 희귀한 아이디어나 창의적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독려하면 단 한 번의 성공으로도 조직이 혁신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내에서도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조직원 모두가 공감하고 행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발적 변화를 이끄는 방법이다. 사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방식임에 분명하다. 이 방법은 속도보다는 '함께'가 중요한데, 수직적 조직에서 소통의 문제를 경험한 이들에게 보다 절실한 부분이기도 하다.

 

추가적으로.
요즘 내가 고민하는 또 다른 방식은 'exemplar solving 방법'이라는 것이다. 

 

exemplar(범례)라는 용어는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기인한 것으로 정상과학 상태(평안기)에서 새로운 난제가 나타났을 때 과학자 집단이 서로 공유하게 된 성공적인 문제 풀이 사례를 의미한다. 과학사에서 혁명(패러다임 이동)은 난제들을 푸는 exemplar의 확장에 있다고 보았다. 즉, 새롭게 직면한 문제를 반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업무를 하다 보면 한계에 부딪혀서 어쩔 수 없이 공부(research)를 해야 할 때가 생긴다. 특히나 업무적으로는 답이 없는 문제들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그 답을 찾기 위해 참고해야 할 고전적인 책들부터 최신 기술논문, 기술동향을 알 수 있는 잡지 등이 그것이다. 물론, 루틴 하게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답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이런저런 시도를 통해 얻은 단회적인 해답이거나 그 시스템에 한정된 해결책일 뿐 그 근본 귀인(attribution), 메커니즘의 자체의 이해가 없으므로 지식의 축적, 확장, 반복에는 기여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대체로 내가 맡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쓰는 시간 중 순수 연구를 하는 물리적인 시간은 맨아워의 1/5을 넘지 못한다. 나머지 4/5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위 시간'이다. 그 1/5에서 얻은, 다시 말해 입증된 하나의 개선안이, exemplar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사한 문제에 이 개선 사례를 적용하여 동일한 해결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대안이 된다. 그 대안에 의해 문제는 개선되고 시스템 또는 조직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종종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문제를 분석하는 것에 지나친 의의를 두는 것 같다. 혹은 날카로운 분석에 이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어떤 시스템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내 생각은 다르다. 분석과 대안을 던지는 것 자체로는 충분치 않다. 그 길을 누군가 죄꼬리만큼이라도 걸어가야 그것은 하나의 실행 가능한 exemplar가 된다. 성공 사례가 없는 대안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물론 모든 담론은 대안이 있어야 하고 또한 대안을 말하면 스스로가 모두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그럴 수도 없다. 우리가 인터넷이나 페이스북에서 공유하는 메타 비평이나 정치 비판도, 어떤 의미에서는 주체나 전문가가 아닌 이들의 관심과 지지를 전제로 하며 그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메타 비평도 종국에는 exemplar를 필요로 하게 되며, 무엇보다 비평 담론 스스로가 앙가주망(참여)을 요구한다.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 연구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분명 더 나은 해답을 발견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exemplar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안, 해결책은 결국 구조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문제풀이에 성공한 해답은 그것으로 풀어내는 모습을 보여준 이들에 의해 공유된다. 공유된 문제풀이 사례들은 범례가 되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다수의 참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이고도 이상적인 변화의 방법이다. 이렇게 나는 점점 더 '범례-주의자'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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