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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결혼일기

[제이언니의 결혼일기](5) 부부사이? 모자(母子)와 부녀(父女)사이를 넘어서

"우리집은 아들만 셋이에요. 아빠나 아들 둘이나 어쩜 하는 짓이 똑같은지."

"우리집은 딸만 둘이에요. 퇴근하면 이거 사 달라 저거 사 달라…"

주변 부부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다. 우리 부부도 가끔씩은 서로를 ‘딸-아빠’, ‘아들-엄마’의 관계로 환원시켜놓고 은근슬쩍 상대방을 갈구기도 하는데 이런 농담이 자칫 지나치면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농담처럼 얘기한다 하더라도 상대를 아들, 딸로 치부하는 대화의 기저에는 내심 상대를 도움이 필요하고 보살펴야 하는 수직적 관계의 대상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화점을 다녀온 아내에게 “애나 엄마나 돈 아까운 줄 모른다”라고 말하거나, 아이를 훈육하려는 남편에게 “애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아라”라며 툭 던지는 말을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발끈하여 결국엔 부부싸움의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부부 사이 연륜이 쌓여서 이런 모종의 역할극을 잘 주고받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잘만 대처한다면 아빠 같은 남편, 엄마 같은 아내의 위치에서 이른바 ‘베푸는 자’의 뿌듯함을 누리게 된다. 내 아내는 어릴 때부터 남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 탓에 성인이 되어서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가질 수 없었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나는 그런 물건들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기념일 같은 날 깜짝 선물을 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진심으로 기뻐하곤 했다. 그 행복한 얼굴과 상기된 목소리라니. 그때 내게 보여준 아내의 웃음과 고맙다는 말들, 그 따뜻한 느낌은 지금도 선물 자체가 무색하리만치 소중한 기억이다. 반대로 내가 두통에 시달릴 때면 아내는 나를 자기 무릎에 눕혀서 머리를 안마해주고 새벽까지 끓인 배숙을 챙겨주었을 때는 마치 다시 보살핌을 받은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를 떠나왔지만 이제는 새 엄마처럼 아내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 그런 안정감이 서른을 한참 넘긴 나이에도 솔직히 싫지 않았다.

하지만 부부 간의 이런 ‘엄마, 아빠 역할극’을 계속 즐기다 보면 아들과 딸이라는 미숙한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혹은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욕망이 커져 어느새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상대방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들곤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약했던 건강을 빌미로 몸이 아플 때는 주변 사람들이 마치 엄마가 나를 대하듯 걱정해 주기를 은근히 바랐다. (물론 대놓고 타인에게 표현한 적은 없다.) 그래서 아내에게도 평소엔 내가 헌신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몸이 아플 때는 좀 과하리만치 나를 아들 대하듯 ‘우쭈쭈’라도 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내심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어릴 때부터 건강했던 아내는 전혀 공감할 수 없어 하는 눈치였다. 도리어 아내는 내가 건강상의 적신호를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그냥 방치해 버리는 내 습관을 읽어냈다. 아플 기미가 보이면 쉬면서 몸을 보호하거나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하는데, 나는 의도적으로 더 과로를 했고 병을 키웠다. 그리고는 머리를 싸매고 비장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곤 했다. 안쓰러운 얼굴로 머리에 손이라도 얹어주길 바라며. 물론 아내는 그럴 때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병원에 보냈다.

역할극만이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 더 미묘한 부부 사이의 우월감과 열등감도 존재한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고 아내와 나는 미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연애를 할 때, 아니 신혼 초까지만 해도 콩깍지가 씌어서인지 서로가 좋게만 보였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서 시간이 꽤 흐르자 나는 아내가, 마치 한 공간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용한 집에 단둘이 있으면서도 서로가 각자의 일에 몰두할 때면, 적절한 표현이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뭐랄까, 어떤 친밀함, 에로틱한 느낌과는 사뭇 다른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거기엔 라이벌 관계에서 생기는 미묘한 경쟁심마저 존재했다. 배우자가 가진 어떤 재능이나 성격, 직관력, 풍성한 인간관계, 사회적 자본(아비투스)을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하고 유년시절 부모와의 친밀도가 뜻밖의 질투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치 그림자에게 쫓기듯 아내는 나와, 나는 아내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했다. 솔직히 우리는 상대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보다 정직하게 내면 깊은 곳에서 인지되는 어떤 우월감과 열등감을 직면하는 날엔 함께 살을 부비며 누워 있어도 서로에게서 일정한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아내를 통해, 아니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선을 보다 세밀하게 경험하며 산다. 나도 알지 못했던 나를 대면하는 경험을 한다. 물론 지금도 그 경험은 ‘현재진행형’이다. 때론 아내에게 아들이고 싶은 내 모습과 더불어 아내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아빠가 되고 싶은 내 이중성을 본다. 때론 그보다 더 창피한 우월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름의 꿈을 꾼다. 그런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좋은 관계를 맺고자 노력한다. 특히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 많은 교인들이 ‘공동체’를 말하고 ‘관계중심적’인 담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한 인격을 통해 나의 내면을 투영해볼 만큼 깊은 관계에 집중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라는 역학관계는 여전히 아내와 나에게 많은 화두를 던지는 듯하다. 나는 기대해 본다. 이 모든 감정선의 기복을 털어내고 아내에게 그저 사랑하는 남편이자 진정한 친구로 자리매김할 날을,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아내와 한 공간 안에서 일상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