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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결혼일기

부부상담

어제가 부부상담 마지막 날이었다. 상담의 시작은 아내가 원해서였고 나도 상담 자체를 받고 싶기도 했다.물론 크고작은 부부싸움이 동기가 되긴 했지만 와서보니 보통 부부상담을 온 사람들은 이혼 직전의 사람들이 많았다.

부부싸움의 기승전결을 읊을 필요는 없겠지만 부모를 제외하고는 서로에 대해 가장 많은 일상을 노출하고 친밀함을 누리는 관계가 부부관계임을 생각하면 부부상담은 배우자와의 관계 문제로 시작되더라도 부차적으로 혹은 본질적으로 내 문제를 깊이 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나는 나름대로 내 문제를 자주, 깊이 돌아보며 살아왔다. 하지만 상담의 의미, 의의라고 말하자면 내 문제, 내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를 이해관계가 엮인 당사자들 간의 담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훈련된 제3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재구성하고 그 안에서 굳게 믿고 있는 내 선입관을 재조명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상담가는 내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표현과 말들에 주목한다. 무심결에 내뱉은 말실수나 지인과의 대화내용들을 내게 되돌려줌으로써 내가 가진 스탠스를 로고스의 위치에서 해체시키고 재구조화한다.

논리적으로 완결된 것 같은 사건과 입장들이 주변 관계성에 의해 그리고 내 원가족(부모관계) 안에서의 누적된 시간에의해 생성된 관성적인(아닌 척하지만 매사에 고집하는) 생각, 태도, 습관... 그리고 공격성, 우울, 회피, 자만, 열등감...같은 증상들을 발견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건 상담공부를 하면서 이미 상담가가 어떤 의도된 질문을 던지면 '어, 기술 들어오네'라는 인식을 하면서도 그 질문이나 설명에 저항하지 않고 그 질문을 통해 내 내면을 숨김없이 개방해보는 실험(?) 혹은 노력들을 통해 혼자서 분석하던 것보다 더 깊이 스스로를 생각하고 돌아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일반적인 심리치료의 목표는 인지적 재구성을 통해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혹은 특정 상황이 내 내면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게 되면 내가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상적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사고와 행동 변화의 키는 모두 내 안에 있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게 쉽지 않다. 인식이 어려운 이유는 내적 상처들을 외적 상처처럼 명시적으로 인식하고 매번 치료를 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거나 두려워서 마음 속 어딘가로 숨겨서 그것이 부정적 패턴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방치하다가 나의 일부가 되어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으로 발현되기 전까지... 우리는 그 고통을 꽤나 잘 견딘다. 내 문제, 너의 문제가 잠복해있다가 우리라는 친밀함이 형성되면 발현된다. 각자의 영역을 고수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영역이 늘어날수록 나의 문제와 너의 문제는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이상적인 생활을 방해한다.

내 문제가 타자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고 그 반대도 성립한다. 너, 나, 우리의 문제가 공시적, 통시적인 축을 따라 공동체성을 흔들어놓는다. 그 공시성(타자와의 관계성)과 통시성(자신의 과거사에 의해 구축된 성향)에 대한 제3자의 재규정, 재구성에 의해 재인식의 과정이 일어나는 셈이다.

3개월 정도의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나름대로는 치열하게 바라보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잊을 것 같아, 뇌 안에서 일어나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교육이라 시간도 남고..)

2017.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