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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Cine

왕가위

중경삼림, 두번째 에피소드 중 한 장면.

채사장 덕분에 왕가위 감독 영화를 정주행 중이다. 얼마전 <화양연화>를 재개봉해서 극장에서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찮게 보게된 채사장 유튜브에서도 그가 인생영화로 왕가위의 <중경삼림>을 꼽는 걸 보고 그 영화도 연달아 다시 봤다. 두 영화를 보고 나자, 내친 김에 연결고리가 있는 <2046>까지 보기에 이르렀다.

 

이쯤되니 영화를 즐기려고 본 것인지, 채사장이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혹은 공감하기 위해 영화들을 본 것인지, 혹은 왕가위 감독 작품들을 분석하기 위해 본 것인지.. 그 초심이 무엇이었는지 까먹은 채로 한주 동안을 왕가위 작품들과 보냈고 나름 유익했(던 것 같)다.

 

곁가지 이야기를 먼저하자면, 그의 영화는 지금봐도 화면이나 장면들이 세련된 느낌이 든 게 인상적이었고, 예전엔 몰랐는데 당시 홍콩 최고의 여배우들이 모두 양가위 영화에 나왔다. 그것도 작품마다 주연 한 명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홍콩의 여배우라면 왕가위 영화에 반드시 나와야 하는 룰이라도 있는 듯, 한 영화에 경쟁하듯 주연급 배우들이 동시 등장했다.

 

물론 회화적 느낌마저 주는 그의 독보적인 미장센이 한 몫 했겠지만, 연달아 영화를 보면서 왕가위 감독이 남녀관계에서의 디테일에 강하고, 특히나 속내를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 동양의 남녀간 감정 전달에 탁월한 회화적 개연성을 부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이유로 여배우들이 그의 영화에 출연하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풍성하게 조명을 받게 되니, 점점더 그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례로, 영화에서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아 내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수리 첸(화양연화)의 행동과 대사나 반대로 감정을 숨기지 못해서 중간중간 오작동하는 기계처럼 행동하는 페이(중경삼림)나, 총격전을 벌이면서 쫓기다가 들어선 바에서 어린 남자에게 대시를 당하고는 안도감에 함께 술을 마시다가 단잠에 빠지는 마약밀매범(임청하)가 그렇다. 남녀의 역학에서도 정작 이뤄질 상황에서 상대가 떠나거나, 관계를 유보하는 주인공들은 처음엔 의아하고 어이없게 여기다가도 돌아서면 뭔가 그(녀)의 심리를 알 것도 같은 묘미랄까, 관객에게 등장인물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유추하게 만드는 상호작용을 감독은 능수능란하게 이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나이가 들어서인지 영화 자체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영화 주변에 더 꽂히는 거 같다. 감독에 대해, 그의 의도나 그가 그 영화를 찍었을 때의 나이, 영화가 제작된 연도와 그 해의 그 나라의 분위기, 이런 것들에 더 관심이 간다.

 

...물론, 오늘은 이 모든 걸 잊고 <로키> 1편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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