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나는 다윗왕에 대한 교훈을 언급하면서 그가 별볼일 없던 시절부터 이미 왕의 자질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었던 점을 들곤 했다. 그는 양을 치던 목동 시절부터 자신이 맡은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곰이나 사자와 같은 맹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어 그들을 구했고, 그는 그렇게 자신의 exemplar를 쌓아가며 조금씩 '규모의 통치' 능력을 키워갔다. 이는 마치 프렉탈처럼 이미 그 안에 있는 치리의 방식을 더 큰 환경에 적응시켜감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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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교회는 별볼일 없던 다윗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갑자기 골리앗을 때려눕히고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르는 축복을 받았다고 허언적 설교를 일삼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는 이미 양을 치던 이새의 보잘것없는 막내 아들 시절부터 그에게 주어진 생명을 보존하고 다스리는 왕다운 하나의 작은 프렉탈을 형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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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이런 내 생각은 조금 더 변했다.(변질되었다) 그는 '규모의 통치' 안에 들어서면서 자신이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되는 타인의 아내를 뺏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실제로 빼앗고 살인까지 일삼게 되)었고, 권력이 강해질수록 정치적 야욕들에 의해 그의 아들조차 죽게 되는 비극을 경험해야 했다. 또한 점점 더 커져가는 규모 속에서 굳이 필요치 않은 인구조사를 하다가 신의 노여움을 얻기에 이르기도 한다. 결국, 그가 시작한 왕조는 솔로몬에서 크게 변질된 채로 이스라엘의 분열과 재난의 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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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다윗왕의 '성공'을 배우고 따라야할 교훈으로 생각해야 할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지 좀더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가 죽을 때까지 여호와를 섬기며 자신의 잘못들을 고쳐 나갔기 때문에 그를 성공한 신앙의 선배이자 위대한 이스라엘 왕으로 치켜 세우고 여전히 그에 대한 일화로 설교를 일삼지만. 생각해보면, 그는 이새의 막내아들로 양을 치며 동산을 거닐고 아내와 아이들과 안분지족하며 살았다면 더 삶이 행복하고 내적으로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 나이가 찰수록 그 '규모의 통치'가 그렇게 신앙의 후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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