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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book

착한 바바

연초에 바바가 하늘나라로 갔다. 한참 추울 때는 지났었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잠간 호전이 되어 겨울내내 바바와 추운 동네길을 산책한 기억이 났다. 머리 속 기억이라기 보단 몸의 기억, 이를테면 요맘때 겨울 냄새와 산책길 풍경, 그리고 자꾸 아래에서 빠른 발걸음으로 내 옆을 따라오고 있는 것 같은 움직임의 기억들.


사실 나는 반려동물을 원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항상 주변에서 보이는 동물들에 마음을 썼고, 그렇게 바바는 우리가 입양을 모르던 시절 동물병원에서 비용을 내고 데려온 순종 강아지였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네 다리 모두 관절 수술을 했고 그때는 강아지를 데려온 걸 후회했다. 이후로는 자연스레 우리 가족이 되었는데 큰 탈 없이 지내다가 두 차례 바바를 좋아했던 지인 가족에게 맡겼던 시기에 안 좋은 사료나 기타 음식(과자)로 인해, 혹은 원래 약했던 체질이 나이들면서 나빠졌을 것으로도 추정되는 건강상의 이유로 10살을 갓 넘긴 올해 우리 곁을, 내 곁을 떠났다.


사택에 사는 동안 건강이 안 좋은 길고양이들을 들이면서, 이사 전에 잠시 바바를 너무 좋아했던 동네 이웃에게 맡겼고 프랑스 장기 출장 기간에도 한번 더 그랬는데, 그분들이 바바를 좋아하긴 했지만 반려동물 돌봄에는 좀 무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아쉬움은 아주 작은 원망으로 남았다가, 다시금 왜 이 아이를 책임지지 않고 남의 손에 잠시 맡겼던가 하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작년 여름부터 병을 앓으면서 이 아이에게 죽음이 도래할 수 있다는 걱정과, 그에 상응하게 부담이 되는 매달의 치료비를 생각하며 두 걱정이 동일한 무게로 다가오는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도 너무 싫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상태가 좋아지는 바바를 생각하며 매일 나와 산책길을 걷고,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잘해주자, 이런저런 생각말고 지금 잘해주자.. 그렇게 요맘때쯤 재택할 땐 내 발 옆에 두고, 퇴근 후엔 산책을 했다.


병이 호전되는 것 같아 마음을 놓았던 한 두달 정도.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았지만 다소 무신경하게 바바를 재우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침에 내가 침대에서만 일어나도 밥달라고 분주하게 제자리를 돌던 녀석에게서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언젠가'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여겼는데 그렇게 갑자기 바바는 갔다. 마치 내 머리 한구석에 치료비 걱정을 하는 걸 알았던 것처럼 너무 착한 그 아이는 걱정 말라는 듯, 내색 없이 그렇게 빨리도 떠나갔다. 


다음날 일어나지 못할 줄 알았다면 그렇게 무심하게 재우지는 않았을 텐데. 이웃에게 맡기지 않았을 텐데. 아프기 전부터 잘 챙겼을 텐데. 너를 데려오고도 후회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을텐데. 너는 왜 내 앞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인 것처럼 이렇게 착하게 삶을 마감한 건지. 왜 나를 나쁜 주인으로 남게 한 건지.


일년 가까이 막상 쓸 수 없었던 바바에 대한 속내를 남겨본다. 추운 공기를 들이키며 동네를 나설 때마다 걸으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눈을 감으며 즐거워하던 네 얼굴이 떠오른다. 사진도 못 찍어 두었는데. 혹시 그 표정이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을까봐 자주 걱정한다. 2년전 네 사진 보면서 이제는 건조하게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죽을 때 꼭 마중 나와줬으면 좋겠다. 착한 우리 강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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