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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사사로운 일상을 까는 당신에게 (2013. 6)

나는 몇몇 페친들의 글들은 주요 업데이트만 받아보도록 설정해두었다. 성격상 친구를 끊는다는 게 쉽지 않은 탓에 몇몇 페친들의 잦은 포스팅에 잠시 눈을 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팔로우를 취소한 페친들의 상당수는 타인의 사사로운 행위들을 너무 상습적으로 '까는' 글을 쓰는 부류다. 사실 요즘은 일상적으로 주변에서 기괴한 행동을 하는 이들의 사진을 찍거나 행동을 묘사하여 자기 담벼락에 올리는 이들도 많고, 온라인 매체도 그런 이들을 빈번하게 기사화하거나 나아가 그들의 신상을 털기도 한다.

 

솔직히 나도 '뒷담화' 많이 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불특정 다수'의 기이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금은 관대할 필요가 있지 않나, 다 나름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 이건 일종의 투사와 같다. 다시 말해, 이런 류의 관대함은 평소 집에 와서 이불킥을 할 법한 내 실수에 대한 관대함일 수 있겠다는 말이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매 순간을 긴장하고 실수 없이 살 수는 없다. 누구나 정줄을 놓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툭 던지거나 길거리에서 흥분하여 큰 소리로 떠들기도 한다. 다른 팀의 직원이 내 독촉 전화나 회의 때 짜증 섞인 말투, 부적절한 단어 하나에도 불쾌함을 느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진상짓을 한 바로 '그 날'이 우울증에 허덕여서 걷기조차 힘들었던 날이었을 수 있다. 나를 세게 밀치고 지나간 아저씨는 부모가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갔다고 전화를 받고 달려가던 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때로 우리는 '답잖게' 그날따라 유독 뚜껑이 열리거나, 심하게 피곤하여 어떤 사소한 부탁마저도 거절하게 되는 날이 있다.

 

한국은 서비스업의 천국이다. 물론 소비자에겐 천국일 수 있겠지만 그 업종 종사자에겐 사실상 지옥이다. 요즘 언론에서 자주 회자되는 감정노동, 이를테면 백화점이나 식당, 텔레마케팅 업무를 보는 많은 이들. 그들이 하루, 한 달 동안 대해야 할 사람들의 수는 몇 명일까.

 

각자의 '나'는 참 소중하게 다뤄줘야 하는 존재이지만 불쾌감을 준 타인이 하루에도 수십 명의 진상 '고갱님'을 상대하다 지친 감정노동자일 수도 있다. 택배, 음식 배달, 전화응대, 인터넷 장애 수리 등등 하루에 할당량과 건수로 '쪼임'을 당하는 이들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 인격'으로 대할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아주지 못한다.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기본은 지켜야지', '괴물은 되지 말아야지'... 내 상식에 맞춰서 그를 판단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본은 하라'고 요구하지만 그 기본이 서로가 정해놓은 최소한의 자존심을 건드릴 경우 우리는 자신의 담벼락에 상대방을 까고, 인터넷에 올리고 신상을 털고, 지지자들을 얻어 당사자를 '괴물'로 만든다. 때로 나도 누군가에 의해 괴물이 될 수 있고, 당신도 누군가에 의해 '개새끼'가 될 수 있다. 


살면서 내가 깨달은 건, 내가 정한 '관대한 최소 룰'을 깨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매번 지적질을 하고 그것을 이슈로 삼는 것이 참 위험하다는 사실이었다. 나조차도 일 년 365일 매 순간 내 기준에 맞춰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관대함이 필요한 특정한 날과 특정한 정서가 있다. 살짝 '또라이'가 되어도 배려받고 싶은 순간이 있다. 

 

오늘도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전화 너머에선 마음에 준비도 되지 않은 나에게 엄청난 속도와 논리로 보험상품을 설명한다. 어쨌든 그게 그들의 생업이다. 무례하게 만드는 냉혹한 사회구조는 따로 있는데 나는 감정에 휘둘려 전화기 너머의 타인을 '디스'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 사람 얘기나 올려서 스트레스를 풀어볼까. "그 마음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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