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3장 묵상
1. 바벨론 유수 이후 페르시아의 지배하까지 이스라엘 민족들을 둘러싼 가장 큰 문제는 영적 혼합주의 문제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느헤미야의 성벽 제건은 그런 의미에서 주의깊게 관찰할 요소들이 있다. 침략의 위협과 굶주림의 위협 속에서 성벽 제건이라는 중대한 과업을 완수하고 말씀이 선포된 이후. 그러니까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이 어느정도의 안정을 찾으면서 다시금 싸워야 할 내부의 적이 나타난 셈이다.
2. 외부의 적은 비교적 그 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과 같은 물리적 공격은 있지만, 외부의 적과 싸울 때는 적어도 심리적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오랜 포로시기에 들어온 세속화는 안정기에 찾아온 내부의 적으로서 그 문화적, 일상적 흐름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이스라엘은 일상과의 싸움에 직면했다. 이는 적당히 말씀을 이해하려는 매너리즘이라기 보다는 오랜 이방생활에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비교적 짧은 기간에 구별된 삶을 살기를 종용하는 영적 원리들에 충돌했기 때문이 아닐까.
3. 안식일을 지키는 대목을 현대에 끌어와 적용할 때 다소 긴장감이 발생한다. 주일에 금전 사용을 금해야 한다거나 주일에는 교회활동 외에 어떤 '세속적 행동'을 계획하거나 직장에 출근하는 일을 죄악시하는 것들이 그 예다. 구약의 이 배경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원리는, 세속화된 사회에서 구별된 삶을 그 '사회문화적 익숙함'으로 인해 그 습속을 바꾸기 힘들더라도 비교적 빠르게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다.
4. '안식일을 지킨다'는 본문은 세속 문화에 물들지 않고 구별되게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현대의 가장 큰 세속문화는 자본에 의해 사회를 등급화하는 행위이다. 현대 사회가 불가피하다고 인정하고 들어가는 혈연, 지연 친화적 풍토, 사회에서 소외받은 계층에 대한 방기, 사회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세상이 제시하는 자기계발서 방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일련의 삶의 방식들이다.
5. 무엇보다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종교적 행위를 수행하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이 아니다. 성령 임재 이후의 성도의 삶은 보다 내적이고 내밀한, 내 안에서 일어난 혁명이지 공개적으로 신앙을 선포하고 세속사회에서 찬송가를 틀어놓거나 나무 십자가를 보여주거나 대형 집회장에서 쪽수를 과시하며 소리치는 통성기도의 음량이 아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우리는 말세에 내면적인 '가오'를 지키는 삶을 분투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6. 세상을 너무 교양있게, 세상에서도 칭찬받고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삶. 양 진영에서 두루두루 칭찬받고 싶어하는 내 천성, 성격적 결함들이 때로 영적 원리와 충돌한다. 구약의 내러티브는 교양없게도 자주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즉각적인 구별된 삶'을 요구하고는 영적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피곤한 그 일상마저 흐트러놓는다. 그 원리를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성경이 드러낸 바 구별된 삶, 회심, 돌이킴과 같은 이슈에서 말씀은 기간에 유예를 두지 않는 듯 하다. 고로, 오늘도 나는 내 천성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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