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갈구는 식의 농담이 싫다.
최근에도 페친들과 대화하다가 꼭 비슷한 패턴에서 나는 참지 못하고 굳이 지적(질)을 하게 되는 우를 범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름 재밌으라고 하는 농담이지만 그 속에서 갈굼의 의도가 느껴지거나 혹은 '언피씨'하다고 느껴지면 나는 곧바로 입꼬리가 내려간다. 잘 넘어가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일례로, 대화의 문맥상 '우리 진짜 ㅂㅅ같지'라는 대화에 제삼자가 '그래, 너네 진짜 ㅂㅅ같아'라고 답할 때의 'ㅂㅅ(병신)'이란 단어는 발화자에 따라 언어 게임의 용례가 다르다는 말이다. 혹은 누군가가 '나는 참 머리가 크다ㅠ'라고 말할 때 상대가 '그래, 너 4등신 같아'라고 하는 거다.
기사화되기도 했지만, 소셜 네트워크 안에서 갑작스럽게 친구 관계를 정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페절', '언팔'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서로 친하지 않거나 관계가 서먹해서가 아니라, 어느 날 '상대가 단 댓글에 맘이 상해서'가 많았다고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쿨'하려고 애쓰고 '쿨'하게 굴 것을 자주 강요받지만, 나는 인간 본연의 정서가 '쿨'할 수 없다는 데 한 표를 던지련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는 작은 규모의 나름 괜찮은 곳이었다. 그 안에서 사람들과 진솔한 교제가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한데 언제부턴가 서로 친해졌다고 느끼기 시작하자 몇몇 지인들이 웃으며 상대를 갈구는 농담을 즐기기 시작했다. '너네 집 가난하잖아.ㅎㅎ 남은 음식 싸가야 하지 않겠어?'라거나 '어이, 지방대 출신!', '너 머리에 총 맞았냐' 같은 말들이 오갔다. 대화가 흘러가듯 지나가고 다수는 웃고 넘겼기에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모인 자리가 점점 불쾌해졌고 자연스레 나는 몸도 마음도 멀어졌다.
아마도 그 시절의 불쾌함 때문인지, 혹은 그때 나서서 표현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를 비하하면서 즐기는 개그나 대화가 싫어졌다. 그냥 그 시간을 감내하며 듣고 있기조차 싫다. 물론 나도 누군가를 그런 식으로 갈구면서 웃었을 것이다. 면전에서는 못했더라도 뒷담화를 즐겼다. 살면서 어떤 시기에는 누군가를 그렇게 비웃었고 나름 예리하게 타인을 잘 찔러댔던 것 같다.
정혜신 선생은, 자학 개그를 즐기는 연예인들, 이를테면 뚱뚱하거나 못생겼다고 자학하면서 대중을 웃기는 개그맨들의 상당수가 일정 기간 동안 가혹한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을 하는 사례들을 들면서, 개그를 하는 동안 쿨하게 자신을 받아들였던 게 아니라 사실은 자기에게 지속적인 상처를 줘서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방향으로 애쓰더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많이 공감이 됐다.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그런 거 같다.
나는 '까는' 농담이 싫다.
누군가를 '갈구고' '희화화'하고 '저격'하고 '디스'하는 상황들이 달갑지 않다. 그리고 많은 관계가 온라인 안에서 이뤄지는 요즘이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마음 문을 닫고 그 사람과의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듯 어느 날 갑자기 '언팔'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지적질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생존본능에 가깝다고 하겠다. 지인들은 쿨하지 못한 나를 좀 배려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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