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왜 변하는 걸까.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아마도 이 글은 '39금'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되며 신혼이거나 싱글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주제라고 생각된다. 반면 결혼한 지 10년이 넘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들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는 최소한 긴 결혼생활에 대한 상상력, 혹은 공감능력이 요구되는 글일 수 있다. 또한 이 글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고, 그렇기에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다는 점도 미리 언급하고 싶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이상형을 선택하는 방법'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빠져있다. 그리고 그것을 고려할 때 이야기는 사뭇 다르게 전개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나도 서른에 결혼을 했지만 당시에 결혼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의 내 상태를 돌아보면, 서로를 물리적으로 막 끌어당기고 얼굴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가시지 않는, 일종의 '조증 상태'였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누적된 연애들의 연장선 상에서, 이 연애가 최고의 것이라는 최종 결정이랄까. 비교적 단순히 말하자면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최고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있는데, 어떤 물건을 고를 때 그것이 평생 써야 하는 물건이라면 선택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냐고 묻곤 한다. 나 또한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시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었던 것 같다. 20대의 나와 30대의 나는 다르고, 40대의 나는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모든 '나'가 같다면 그 자체를 일면 좋게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그간 한치의 진보와 성찰, 변화조차 이뤄내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혼 후에 '콩깍지가 벗겨진다'는 말은 차치하고서라도, 20대에 선택한 내 이상형이 30대에 유효하고 다시 40대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나 자신에 대한 몰이해와 타자인 배우자에 대한 몰이해 덕분일 수 있다. 따라서 결혼 이후에 서로의 마음과 생각이 여전히 그대로일 거란 생각은 어느덧 자신만의 신념, 나아가 신앙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결혼할 당시 나의 생각, 성향, 나의 지향점들이 변하고 배우자도 동일한 변화를 겪는다. 때론 그 변화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는 고정된 관계가 누구에게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 얘길 조금 하자면, 30대 초반의 나는 꽤나 교만했기에 - 엄밀히 말하자면 겸손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면서도 이미 세상의 모든 진리들을 깨달았고 거의 대부분의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 결혼 후에도 내가 생각하는 가정의 큰 그림, 아내상, 자녀상 같은 게 꽤나 명확하게 그려져 있었다. 강요하진 않았지만 내 '부드러운 권위'를 통해 점점 그 그림이 완성되어 갈 거라 생각했고 한동안은 정말 그렇게 되는 듯했다.
하지만 결혼한 지 6년째였나, 7년째에 접어들 무렵, 그러니까 아이가 태어나고 몇 년 후였던 것 같다. 갑자기 아내는 사사건건 나와 너무 안 맞는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컸던 탓에 자주 다투게 되었다. 많은 대화가 오갔고 그 대화는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신혼 때는 싸우더라도 대체로 아내가 분노의 극에 달했다가 식은 후에는 먼저 사과를 하는 패턴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서로 오해가 있으면 그것부터 풀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일단은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한참을 들어도 좀처럼 오해라고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생각차, 기대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내가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믿었던(고쳐주고 싶었던) 아내의 현재 모습은 아내 입장에서는 사실 그간 최대한 나에게 맞춰 살아온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자 이젠 더 이상 나에게 맞춰가며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덧 아내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고, 아내에게는 나도 자신이 기대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결혼 이후에 헤어짐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싱글일 때가 편했던 사소한 일상들이 떠오를 때면 결혼한 상태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극도로 다투다가 헤어지는 상황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갑작스러운 아내의 변화가 내겐 많이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반복되는 마찰 속에서 한참을 다투던 어느 날, ‘이렇게나 다른 나 같은 남자를 선택해서 이 여자도 정말 행복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내는 그때 한참 내적으로 성장 중이었던 것 같다. 더 깊어지고 더 충만해지는 과정 중에 있었는데 나는 그게 낯설었고 그런 변화 자체가 싫었다. 솔직히 좀 두려웠던 것 같다. 그냥 이 사람이 너무 멀리 가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던 나의 ‘최고의 선택’이자 ‘이상형'이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불안하고 슬펐다.
그렇게 다툼이 반복되자, 정말 이 여자와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겠지만 우리가 이혼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아내가 너무 미웠지만 이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시점부터는 내가 아내에게 적절한(영원한) 배우자가 되어주지 못해서 슬프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결혼할 때 우리는 이런 상황이 찾아오게 될 줄 몰랐을까.. (물론 우리는 그런 이야기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혼을, 부부 싸움할 때 서로를 위협하는 무기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자, 우리의 싸움은 꽤나 빨리 감정 영역에서 이성 영역으로 돌아왔다. 집을 어떻게 처분할지, 아이를 어떻게 할지, 부모에게는 뭐라고 말할지 등등.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종종 차분해졌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실 다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듯이, 우리의 이혼 플랜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신기하게도 서로가 완전한 남이 된다는 생각, 서로에게 정말 ‘0’인 상태가 된다는 결정 앞에 다다르자,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마음이 정말로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걸 공감하게 됐다. 물론 여전히 서로 안 맞는 부분이 명확히 남아있었고, 이미 우리 관계가 이전과는 달라졌으며 앞으로는 더욱더 그렇게 되겠지만, 그 사실이 서로에 대한 애정을 사라지게 만들어 영영 각자의 길로 가야 한다고 결론 내지는 않았다.
아직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서로의 마음을 돌아봤고 그 외에 현실적인 이유들이 우리 앞에 있었다. 이제 막 커가는 아이도 재밌게 같이 키우고 싶었다. (부연하자면 그건 애 때문에 헤어짐을 주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아이를 함께 키우면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그 가치 있는 시간들을 둘 다 너무 부여잡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기싸움의 이면에는 서로에게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자리 잡고 있음을 직면했다. 정작 그게 우리가 서른을 넘긴 어른답게 성숙한 논쟁을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할 말, 안 할 말을 너무 많이 했던 것 같다. 감정의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한편 좋은 점이 생겼다면, 이로 인해 이후에는 서로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꽤나 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이혼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만일 정혜신 선생에게 이명수 님이 나타난 것처럼(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부이므로), 아내에게 나보다 더 잘 맞는 남자가 나타난다면, 그리고 다행히 그 남자도 아내를 좋아한다면, 나는 이혼을 충분히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나아가 우리가 이혼할 수밖에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배우자의 행동과 상황에 대해서도 꽤나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약간은 우스갯소리가 섞이긴 했겠지만 서로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오히려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는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우자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막연히 사랑이란 이름으로 두리뭉실하게 포장된 단어 이면에 존재하는 기대감 내지는 ‘소속감’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의 층을 쌓아가며 지내는 시간들이 다시 관계를 약간 더 '재미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10년, 20년이 지나면 각자 성장과 변화를 겪게 되고, 그 변화에 따라 이전에 애타게 좋아하던 배우자와 더 이상 함께 하기 어려워지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함께 하기 싫어질 수 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당시 이상형을 선택했을 때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더 성숙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대체로는 배우자와 나 모두가 변화와 성장을 겪으면서 초기의 선택이 다소 동적인 상태에서의 결정이었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많은 부부들이 그 마음을 외면하려고 한다. 나 또한 그랬다. 일시적 권태로 치부하거나 분명 변화를 감지했으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마음을 미뤄둔다. 그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괜히 다른 곳을 서성이며 새롭고도 짜릿한 즐거움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과거에는 막연히 이혼이 무서웠다.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싫었고 배우자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혼 자체는 그렇게 무서워했으면서 언제부턴가 결혼 자체를 절절하게 행복하다고 느끼지도 않게 되었다. 그럴 때면 싱글이었던 때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더 멀리 갈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아내 덕분에 우리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정말 서로가 선택한 ‘이상형’의 기한이 다된 것인지 피하지 않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었다.
아직 단정적인 이야기를 할 나이는 아니므로, ‘이상형’에 대한 내 생각의 잠정적 결론은 이렇다. 일단 나 스스로도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형’을 선택해놓고는 이혼은 이혼대로 무서워하면서 정작 결혼생활은 즐거워하지 않는 이 상황이 비극을 넘어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았다. 카르페 디엠. ‘이혼하기 전까지는 이 시간을 충분히 향유하자’ 그렇게 결론지었다.
최근 우리 부부는 매년 결혼기념일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결혼 계약 갱신’ 축하를 한다. 저녁에 케이크를 자르며 농담처럼 ‘일 년 더!’라고 말하지만, 결혼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의 인식은 결혼이 유지되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 또한 일깨워준다. 심사숙고한 선택이 영원을 담보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원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충분히 향유될 기회마저 버릴 필요는 없다. 또한 그래야만 선택이 변할 때 오히려 더 정직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경험적으로 연애의 기한과 결혼의 기한은 서로 셈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체로 연애는 끌림, 설렘과 같은 감정적인 요소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이 사람을 봐도 더 이상 이성으로서 매력이 안 느껴지고 며칠 안 봐도 연락을 안 하게 되거나 궁금해지지 않을 때, 상대의 그런 모습에 슬픈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나의 그런 모습에서 고민이 깊어지기도 한다. 결혼의 기한은 좀 다른 것 같다. 누구나 원가정에서 느끼던 ‘집’에 대한 향수 내지는 편안함이 있다. 결혼을 하면 부부는 함께 살게 되고, 결국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 ‘집’ 자체가 되는 것 같다.
‘집’은 특성상 루틴한 측면이 있어 어느 정도의 긴장과 설렘이 반감되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반면에 어떤 외부 공격이나 고달픈 객지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안전하고 평안하게 쉼을 얻는 공간이기도 하다.(솔직히 말해, 나는 연애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이 ‘집’이라는 아우라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또한 그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된 와인처럼 더 풍부하고 따뜻한 정서를 공유하게 만든다. 이 소중한 공간을 배우자와 공유하므로, 이 유대감의 기한은 ‘끌림’과 ‘설렘’의 존재 여부보다는 함께 공유하는 물리적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집’이라는 존재가 유효한지 여부에 달려있는 것 같다. 따라서, 결혼의 기한을 연애의 기한으로 치부하고 싶을 때는 이런 생각도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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