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의 위너들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아메리칸 아이돌>부터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처럼 번진 <슈퍼스타K>,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X 101>까지. 꽤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든 의문이 하나 있었다. 오디션 진행 중에는 그렇게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그 능력에 열광했던 위너들이 그 이후의 행보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게 되지 않게 되더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위너'들은 정작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그다지 이렇다 할 성공을 이뤄내진 못한 것 같다.
이에 대한 가장 쉬운 진단은 '에너지의 고갈'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게, 마치 공평한 기회를 통해 지원자 중 가장 재능이 뛰어난 이를 발굴하는 값진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 프로그램은 재능을 단기간에 고갈시키는 일종의 '독약'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우승자는 재능도 확인받고 상금도 받고 게다가 엔터테인먼트사와 계약까지 체결하는 '일타삼피'를 누리는 게 아니다. 몇 개월 동안 이뤄지는 살 떨리는 경합 속에서 개별 참가자는 자기 능력의 최고,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그 집중력 때문에 대중은 주목하고 프로그램은 매주 뜨겁게 달아오른다. 마치 불꽃놀이를 한 번에 터뜨리듯 그 순간은 다들 눈을 떼지 못하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느슨한 속도나 작은 섬광에 열광하기가 쉽지 않다.
단적으로 말해, 오디션 프로그램은 숨은 재능인을 찾아내서 그의 전부를 몇 개월 안에 '전소'시키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 그 엄청난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소비한 대중은, 대부분 그 이후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본 참가자들에게 관심을 갖기가 어려워진다. 특히나 우승자나 상위 참가자들의 경우, 대중들은 마치 중견 연예인을 보듯 그의 모든 쇼맨십을 이미 다 겪은 듯한 착각마저 갖는다. 대중문화 속 연예인들은 재능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어필하는 신선함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극한의 경쟁이 사라진 공간이자, 자신의 모든 재능, 혹은 그 이상을 소모해버린 무대에서 오디션 위너들이 경험해야 하는 이른 피로감, 무력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관성적으로 누리는 즐거움 가운데에는, 상당히 악의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설령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때때로 그런 시스템들은 자동 기계 안에서 반복되는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망가뜨린다. 우리는 재능 있는 이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박수갈채에 휩쓸려 채 무르익지도 않은 재능을 소진시켜야만 잠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득위의 비결'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의 모든 글과 생각을 좋아하지만, 특히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분의 '득위의 비결'이라는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득위의 비결을 소개하겠습니다. 개개인의 위(位)를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득위의 기본에 관해서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70%의 자리’가 득위의 비결입니다. “70%의 자리에 가라!" 자기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 게 득위입니다. 반대로 70의 능력자가 100의 역량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면 실위가 됩니다. 그 경우 부족한 30을 함량 미달로 채우거나 권위로 채우거나 거짓으로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맡은 소임도 실패합니다. ‘30%의 여유’,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여유가 창조성으로, 예술성으로 나타납니다." (신영복, <담론> 중에서)
솔직히 나는 청년시절에 신영복 선생에게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당시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서 120%의 자리에 안착해도 모자랄 판국에 70%의 자리로 가라니. 뭐랄까, 나이 든 현자가 욕심내지 말고 안분지족 하라는 그냥 그런 조언처럼 여겨졌다. 물론 당시에는 그의 글에서 '자리'와 '노력'을 혼동했다. 70%의 노력만 하라는 말이라기보다는 70%의 자리에 가라는 의미는, 능력이 부치는 자가 고지를 점하여 생기는 부작용도 포함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70% 자리를 70%의 노력으로 대체시켜도 여전히 이야기는 일면 타당한 구석이 있다. 30%의 여유가 없을 때 잃게 되는 것이 위치뿐만 아니라 개인의 창조성, 예술성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매 순간 부단히 노력해야 그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은 매 순간이 전쟁터다.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는데 자신의 기력을 소진하기 때문에 정작 창의적 도약을 위해 비축할 에너지는 없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득위의 비결은 왜 오디션 프로그램의 위너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준다. 전쟁터 같은 경쟁 프로그램에서 100% 이상을 소화해야 했던 도전자들이 간신히 승리를 거머쥐게 되는 순간, 그는 바로 프로 무대에서 대중들을 대면해야 한다. 물론 그는 그간의 경쟁을 통해 큰 무대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매 순간 무대에서 준비된 것들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겠지만 정작 프로 무대에서 보여줘야 할 내용물을 준비할 여유는 데뷔 전보다 더 부족하게 된다.
비단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직장에서 입사 초기부터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회사가 무리하게 주는 일들을 과로와 정신력으로 소화하려는 신입사원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어느 정도 직장생활에 익숙한 직원들도 갑자기 여러 차례 조기 승진으로 100% 이상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임원의 자리에 갑자기 앉게 되면 초반 가속도와는 달리 급락의 위험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 삶의 대부분이 그렇다. 루틴 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70%의 상태에 만족해야, 돌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생각의 여유를 갖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거나 더 큰 그림, 다른 분야의 확장을 위한 창의성, 예술성을 발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실패한 건 아닐까
하지만, 무한경쟁 사회에 살면서 마음의 여유를 부리고 살기가 쉽지 않다. 신입사원 시절에 회사 임원분이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고만고만해서는 안 된다. 컵에 물이 흘러넘치기 전에는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고, 물이 흘러넘쳐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여전히 일자리가 부족하고 어느 분야든 경쟁자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70%의 자리'는 고사하고 내 존재감조차 보여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신히 얻은 자리도 더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그 자리마저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질 때, 내가 원하던 자리에서 내몰리게 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실패한 건 아닐까.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이룰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실 그런 의미에서 '처세'라는 것은 신봉할만한 절대 법칙은 아니다. 물론, 모든 것이 '케바케'라거나 처세에 관한 글을 쓰는 이 마당에 '처세 무용론' 자체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처세의 법칙들이 모든 상황에 통용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법칙이 통한 다기보다는 개별 전술을 빈번하게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신영복 선생이 말한 '득위의 법칙'은 어찌 보면 정적인 상태의 전략에 가깝다. 일단 위치를 점하고 나서 숨을 고르고는 반복되는 일상의 영역에서 할 법한 고민이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당연히 선생의 이야기가 적절하지 않다.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70%의 자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신선놀음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설령 내 마음, 건강 상태가 안 좋다 하더라도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내 능력의 70%를 썼는지, 100%를 썼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가진 능력 모두, 혹은 그 이상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가 초인이 아니기에 매번 최선을 다하고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설령 전쟁이 지속된다거나 경쟁이 일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100% 이상의 노력을 일상적으로 지속할 수는 없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개인의 체력과 능력을 고갈시킨다. 그런 연유로 매번 아슬아슬한 삶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자신을 구원하기보다는 점점 자신을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에너지 바닥상태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들 수 있다.
다시, 오디션 프로그램의 위너의 사례로 돌아가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가 그 프로그램을 전장이나 최소한 도약의 발판으로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위너가 된다는 것은 일면 중요한 선택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득위를 위해 이미 70% 이상을 소진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프로페셔널이라는 더 가혹한 전장에 투입되었다는 상황을 깨닫고, 30% 혹은 그 이상의 창조적인 심적, 물적 공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반대로 이제껏 성공했던 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였다고 믿는 순간, 그는 점점 기력이 떨어지고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의 능력만을 탓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처세는 비교적 간단명료하고도 그럴 법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알려주지 못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득위의 비결을 써야 할 지점과 최선을 다해 시궁창을 벗어날 지점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과 매 순간 최선을 요구하는 경쟁 속에서 어느 시점까지 나를 갈아 넣어야 하고, 어느 지점에서는 70%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 해답일텐데 말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안정된 상태가 되었을 때, 살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찾아왔을 때, 혹은 정반대로 너무 매 순간을 고달프게 자신을 소진시키면서 달려가고 있을 때 이러한 처세의 원칙들을 돌아보는 것은 나름의 도움이 된다.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닌 인생에서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이 이 '리듬감'을 배워나갈 수 있다. 우리 안에 이미 소유하고 있는 신적인 수준의 균형감을 신뢰한다면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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