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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에 관하여

(8) 흙구덩이에서 벗어나기

대학원 시절의 일이다.

석사 과정을 마칠 무렵, 졸업 논문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비단 나뿐 아니라 석사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든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당시 나는 특히 더 힘들었다. 신용카드 대금에 쪼들릴 만큼 금전적으로도 어려웠고, 당시 어머니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다. 다행히 회사는 서류 및 면접심사도 마친 상태라 두 달 뒤에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논문이 갑자기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긴 것이다. 랩에서 내부 발표를 잘 마치고 한참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구실 박사과정 형이 논문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논문은 압축 알고리즘에 관한 것이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기존의 방법보다 압축률이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압축률 외에도 다른 이점들이 있긴 했지만, 데이터 압축 알고리즘에 있어 압축률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건 상당히 치명적인 문제였다.

 

최종 발표까지 열흘도 채 안 남은 시점에, 이제 와서 다른 주제로 내용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사형의 지적을 받은 후, 이틀 내내 밤잠이 오질 않았다. 너무 불안했고 우울감이 내 몸 전체를 지배했다. 정작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지만 머릿속은 너무 복잡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혔다. 논문이 통과되지 못하면, 졸업도 연기해야 하므로, 이미 합격한 회사에 입사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한번 입사하지 못한 회사에 재입사도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다음 달이면 카드 결제일도 돌아오고, 금전적으로도 이대로는 단 몇 달도 더 버틸 수는 없는 처지였다. 회사도 못 가고, 졸업을 못하게 되었다고 부모님에게 말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급한 마음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급기야 박사 형에게 전화해서 제발 눈감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형의 전화번호를 열어서 통화버튼을 누르기 직전, 손가락에 힘을 주어 그 버튼을 누르는 흉내만 너 다섯 번. 내가 어쩌다 이리되었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책상에 박으며 전화기를 집어던졌다. 제발 이 악몽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도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눈을 감으면 잡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고, 시간이 흐르자 이대로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냥 죽는 편이 속 편하겠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3일을 보냈다.

먹는 게 먹는 게 아니고, 자는 게 자는 게 아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자 마음은 도리어 약간 차분해졌다. 지금도 종종 그렇지만,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갑자기 내게 닥친 이 상황이 괴롭지만, 그 상황이 끝까지 간다고 가정하고 실제로 어떻게 될지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회사를 못 가게 되고, 졸업 논문을 다시 쓰게 되고,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알리면, 나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바닥이라는 게 내가 논문을 쓰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만 무효화되는 상태인 것이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인데 나는 이미 이 상황에 압도되어 내 목숨을 버릴 고민을 할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물론, 논문 통과와 졸업, 그리고 입사가 큰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 없이도, 대학원을 들어오기 전에도 나는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나는 이렇게 나약하게 무너지기 전에 뭔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지 않으면, 정말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자책하게 될 것 같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망하더라도 운이 없음을 탓하지 나를 미워하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날부터 연구실로 돌아가서 4일 밤낮을 새워가며 알고리즘 수정에 몰입했다. 그 결과는? 내 지인들이 이미 알다시피 이 '논문 사건'은 다. 행. 히.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비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쓴다면, 불필요한 데이터로 치부했던 주변 데이터를 활용하여 압축률에 적용할 방법을 '간신히' 찾아냈고, 그 방법으로 수정하여 처음 작성했던 논문과 동일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새 알고리즘으로 업데이트한 논문을 박사 형에게 보여주던 날, 형은 눈을 크게 뜨며 "어, 이번엔 제대로 됐네?"하고 신기해했다. 무사히 논문 발표도 마쳤다. 졸업을 하고 입사도 예정대로 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정말 다행스러웠지만, 나는 그날 밤에 박사 형에게 전화를 해서 눈감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던 게 무엇보다 다행스러웠다. 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편다면, 그날 밤 전화를 받은 박사 형이 화를 내며 그럴 수 없다고,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눈감아 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결과는 동일했겠지만, 나는 힘든 상황을 넘기고서 오히려 내적 바닥으로 다시 떨어졌을 것이다. 사회로 나가는 첫 발을 부적절한 방법으로 시작하고서 지금도 그 불의한 선택에 자책감을 안고 늙어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이 사건이 해피엔딩이기 때문에,

자기 자랑, 자화자찬 격의 글을 쓰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자화자찬이나 '가르치려 드는' 모든 행위들이 '혐오'와 '꼰대 짓'의 대상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마음 편하게 자기 검열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엔 너무 큰 일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삶에서 그것보다 더 큰 일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15년이나 지난 '그 일'을 소재로 글로 쓰는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이 일로 몸소 배운 그 DNA가 꽤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앞의 글에서 나는 열심히 사는 삶, '노오력'으로 점철된 성공의 허구와 위험성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다시 요약하자면 100% 이상의 노력으로 사는 삶은 성공을 보장하기보단 오히려 번아웃되기 쉽고, 그보다는 매사에 70%의 자리에 서는 것이 '득위의 비결'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어떤 시기에는 그저 70%의 노력에 머무르고, 우울감으로 인해 그 자리에 안주하거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다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으로 떨어지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더욱이 패배감에 젖어 있거나 강한 공포심이 밀려오는 내적 상태까지 겹치면, 더욱 용기를 내거나 최선을 다하기 어렵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남은 세월을 보내게 될 확률도 적지 않다. '그때 내가 그렇게 주저앉아 있었으면 안 되었는데..' 많은 자전적 에세이 글들을 읽다 보면 한 인간이 변화하는 시점에 어떤 결심, 생각의 변화와 더불어 원래의 삶과는 다른 행동 변화를 위한 노력이 반드시 병행했음을 발견한다. 누구나 살면서 그런 '흙구덩이에서 벗어나야 할' 상황에 한두 번쯤은 직면하게 되는데, 내겐 '석사 논문'이 그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그 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노력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쥐어짜도 주어진 시간에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최악의 상황으로 미리 가 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부분은 내가 굴러 떨어질 바닥을 정확하게 직면하고, 그 바닥에 떨어진다 해도 내 존재 자체를 무의미하게 치부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점이다. 그 바닥에 떨어질 마음 준비가 되자, 박사 형에게 눈감아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을 심적인 마지노선을 지킬 수 있었고, 지금도 당시 상황을 상기할 때마다 매번 너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