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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에 관하여

(9) 분노 낮추기: 말싸움 잘 하는 법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당연히 나는 타운전자와 나의 안전을 위해 차 뒤에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였는데, 그 기간 동안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많은 '개무시'의 상황에 밀도 높게 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중 한 번은 4차선 한산한 도로에서 좌회전을 하기 위해 차선을 바꾸려는데 뒤에서는 빛의 속도로 달려오던 차가 차선을 바꾸려던 나를 향해 경적소리를 내며 급정지를 했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고속으로 진입하려다가 급정지를 한 것이다. 차에서 내린 50대 신사분은, 차문을 열고 내 차로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야이 개새끼야, 운전을 그 따위로 하고 지랄이야? 너 죽고 싶어?"

 

호통 소리가 도로를 울릴 정도였고 당시 나는 운전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신사분이 생면부지의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상황이 뇌에서 제대로 해석되지 않았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차선을 바꾸려던 내가 죽을죄를 지은 건지 명확치 않아서 억한 심경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급하게 말했다. "그, 그렇게 빨리, 아, 죄송합니다..." 그 신사분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다시 "개새끼야, 죽고 싶지 않으면 운전 똑바로 하고 다녀!"라고 말하고는 다시 차를 몰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먹먹한 일이 있었던 한 주 내 내, 나는 정상적으로 지낼 수가 없었다. 갑자기 화가 치솟기도 했지만 평소에는 불안하고도 우울했다.

 

 

에너지 보존 법칙: 열역학 제1법칙

사람들은 성격이 다양한 만큼 화를 잘 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를 주체할 줄 몰라 매번 터뜨리는 사람이 각각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경험상 타인에게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무시나 폭력을 당한 후에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순간적으로 잘 참는 이들은 있겠지만 그런 이들조차 장기적으로 나쁜 영향 아래 고통받는다. 집에 와서는 애꿎게 가족에게 갑자기 화풀이를 하는가 하면 애인, 지인에게 장시간 하소연을 해댄다. 그런 상황이 누적되면 깊은 우울감에 빠지거나 중증 정신질환으로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것도, 직장에서 고객이나 상사에게 욕설을 반복적으로 듣거나 무시당하는 일이 계속되면 우리의 정신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모든 사례들이 '에너지 보존 법칙'과 맞아떨어진다.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듯 외압에 의한 정신적 충격량도 소멸되지 않고 내부에 보존된다. 다만 사람에 따라 그 충격에 겉으로 반응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 그 충격을 처리(해소) 해야 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쉽게 말해 욕을 먹었으면 갚아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지인들에게  이해시키는 데에 나는 10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왔다!(그리고 이제 글까지 쓰게 됐다.)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욕을 먹고도 건강한 멘탈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그 스트레스를 '다른 방향'으로 해결할 뿐이지 그것을 오롯이 삼키며 잘 지내는 '보살'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갚아줘야 하나. 다들 말싸움 좀 해봤겠지만-물론, 상당수는 이미 나보다 더 잘하겠지만- 분노 표현에 서툴거나 나처럼 소심하게 며칠을 집에서 화를 삭힌 경험이 있는 이들을 위해 몇 가지 '말싸움의 기본 룰'을 서술해보겠다.

 

첫째 룰. 실제로 받아치는 연습을 하라

말싸움을 하거나 타인에게 갑작스레 욕을 먹고는 분노 게이지가 상승해도 갑자기 받아치는 건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물리적으로 반사신경이 둔한 나 같은 이들이 특히 더 그렇고, 신체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도 그런 부류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 '상대가 진흙탕 싸움을 걸어와도 나는 고상하고 싶다'는 스스로의 생각 때문에 받아치지 않는 경우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언사를 들으면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공격적으로 잘 쏟아내긴 쉽지 않다.

 

나는 종종 이 문제에 있어 사람들이 너무 안일하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많다. 모든 훌륭한 결과물은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오랜 연습과 반복, 고민과 연구를 통해 모든 '마스터피스'는 탄생한다. 일례로 많은 래퍼들의 현란한 가사와 정확한 딕션은 우연히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프리스타일 랩이라는 게 있지만 그조차도 오랜 연습과 실전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발성과 리듬, 그리고 그것들이 '잘 준비된' 상태에서 자유로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일 뿐, 그 이면에는 수십 번씩 되뇌는 연습의 산물이라는 진리가 자리잡고 있다.

 

흥미롭게도 말싸움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은 대체로 권력구도에서 나오기 때문에 내가 약자이거나 나를 공격하는 주변 상황은 빠르게 해소된다기보다는 자주 '고착'되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상황을 직면하고 그 자리에서 제대로 욕을 퍼붓거나 혹은 정당하게 말을 그 자리에서 바로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집에 와서 그 상황을 재연하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나 행동, 혹은 욕설, 논리적인 반론 등을 연습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면 도움이 된다. 일례로, 논문 발표를 해본 많은 저자들에게는 이 상황이 상당히 익숙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발표자들이 15분 내외의 본 발표보다 5분 내외의 까다로운 질문을 방어하는 일에 더 많은 고민과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노련한 발표자는 자신의 논문의 약점을 미리 파악하여 그 약점을 지적할 질문들을 리스트로 만든 후 미리 적절한 답을 발표자료에 미리 준비해 간다. 어설프게 말로 답하기보다는 잘 방어할 수 있는 자료를 띄워서 반격을 일삼기 위해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연습을 할 때는 헬스를 하듯 물리적으로 반복해서 연습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거울을 보며 하면 더욱 좋다. '찰지게' 욕설을 잘 발음하는지, 표정은 자연스러운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사과를 요구하는 표현들을 적절한 톤으로 막힘없이 말하는지 정말 집에서 연습해보는 것이다. 물론, 집에 있는 가족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때론 진지하게 걱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연습은 정작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분노는 치솟는데 당혹스러움과 심장 떨림으로 인해 정작 첫마디가 안 떨어지고 내뱉은 말속에서 떨리는 내 목소리가 들릴 때의 난감함을 없애준다.

 

둘째 룰. 한 템포 쉬어가라

말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대체로 목청이 큰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하지만-물론, 실제로도 그런 일이 종종 있긴 했지만-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단둘이 싸우는 게 아니라면 결국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타당한 논지를 조리 있게 지적해서 상대방이 반론을 제기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쓰고 '깨갱하게 만들어야'라고 읽는다) "그건 아니지,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어, 왜냐하면" 이런 반론을 허용하면 아무리 먼저 고함을 치고 멱살을 잡는 시늉을 해도 정작 싸움은 지게 된다. 때로는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 기운과 여세를 몰아서 말로 쏟아내는 게 유리할 때도 있다. 특히 내향적인 사람들은 적절한 상황인데도 정작 말 자체를 못하거나, 조심스러운 마음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에서는 모질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소심한 이들 사이엔 '취중진담' 상황에 더 공감하거나 '홧김에' 터뜨리는 게 그 성격상 적절한 상황논리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게 유리한 경우는 나와 내 주변 경험에 한정하자면, 단언컨대 날아오는 공을 피하거나 실제 현피를 뜰 때 선빵을 날리는 일 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말싸움을 하거나 상대의 무례한 행동과 언사를 맞받아쳐야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즉흥적인 분노 표출이,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많다. 이는 이미 2번에서도 말한 대로 오랜 연습에 의해 나오는 언변이 즉흥적인 것보다 낫듯이, 준비를 하고 받아치는 것이 무턱대고 아무 말이나 질러보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길게' 뻗을 수 있다. 싸움도 주거니 받거니의 '랠리(rally) 게임'이다 보니 초반에 단타 몇 개를 생각하고 던지거나 빈약한 인신공격으로 이후에 더 욕먹을 상황을 만들어버리면, 도리어 그 말들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토론이나 논쟁을 자주 하는 이들은 타인의 공격적인 언사가 시작되면, 대체로 듣는 중에 뭔가 머릿속에 그 논지를 형상화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몇몇 말들은 즉시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의 얘길 듣자마자 바로 반격에 나서기보다는, 잠시 할 말을 곱씹는 듯 약간의 시간 '지연' 후에야 비로소 오목조목 상대의 이야기에 반론을 펴는 경우를 본다. 설령 그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거나, 말주변이 없는 경우에도 일상적으로 화를 내거나 반박하는 말을 쏟아내기 직전에 '크게 한숨을 쉬는 정도'의 여유를 부리고 입술을 열면, 마법처럼 자신이 할 말의 뼈대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한숨을 쉬거나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독한 말을 내뱉으면 의외로 시각적으로도 '간지'가 난다.

 

셋째 룰. Respice finem: 끝을 생각하라

속에 묵혀둔 화를 단번에 표출하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오늘, 여기서 명예롭게 죽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달려드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그동안 오래 참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은 일단 판도라에 상자가 열렸고 상대에게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 이상, 이 사람과 다시는 안 볼 거라는 마음으로 독한 말들을 서슴없이 뱉어내고 스스로도 진흙탕 싸움에 던져진 사람처럼 과하게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내일의 해는 뜨고, 명예로운 죽음도 없고, 다시는 안 볼 마음이었던 상대는 한 하늘 아래 살면서 계속 마주친다. 그 사람과 관련된 인맥을 다 끊어내면 내 친구 절반도 같이 끊어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회사에서의 다툼은 퇴직을 고민하게 만들기도 하고 부모, 형제와의 다툼은 가족의 연을 끊을 상황까지 가기도 한다.

 

길게 보면, 쉽게 도식화하여 인생을 한 줄로 세워놓고 내가 분노를 표출해서 상대와 대판 싸우게 되는 점들을 그 줄 위에 찍어 본다면, 스스로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점들을 찍어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점들을 찍을 때마다 내 주변 인맥들과 불연속적인 관계에 처하게 된다면, 내 누적된 분노를 '해결'하려고 뽑은 이 칼날이 오히려 나를 겨누게 되고 점점 내 일상과 인생 전반을 불편하고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끝을 생각하라'는 이 말은 모두 '저지른 후'에 돌아볼 말이 아니라, 싸움이 시작될 때 염두에 둬야 할 말이다. 사실 많이 싸워본 사람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 덕에 프로페셔널하게 싸움의 규모와 입을 대미지의 정도, 그리고 이후 주변과의 관계성을 자연스레 따져본다.

 

흔히 느와르 영화를 보다 보면, 완전히 싹을 잘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주변에서도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한번 건들면, 아예 '조져놔야' 한다는 말을 일상에서도 심심찮게 한다. 의외로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에 난 자주 놀란다. 누군가를 밟아 놓으면, 자신도 밟히기 일쑤다. 느와르 영화에서 조차 주인공도 마지막에 가서는 총알 세례를 받지 않나. 그 흔한 무협 영화의 많은 배경이 부모를 죽인 원수를 잊지 않고 찾아가서 복수하는 자식의 내러티브이지 않은가. 무턱대고 칼을 휘두르면 수습할 수 없는 결과를 덤으로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를 조져놓으려고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분노를 쌓아놓았다가 한 번에 해소하려다 보면 그런 '용도'로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화가 나면 쌓아두지 말고 가능한 한 그 상황에서 풀어야 하며, 부당한 타인의 행동이나 말을 들으면 내 불편한 감정과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생각을 타인에게 알려주는 용도가 일차적이어야 한다. 고로,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화'를 줄이기 위해 '화'를 내야 한다는 생각인 셈이다.

 

마치면서: 좋게 마무'으리'

끝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말처럼, 사실 우리는 빈번한 갈등과 분란 속에서 의외로 관계가 더 깊어지거나, 과거의 적이 오늘의 우군이 되는 경험을 생각보다 자주 한다. 피아 구분은 다분히 정치적이기도 하고 시기 상의 입장 차이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싸우더라도 당장은 소원해질 수 있지만 상대의 분노를 보면서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분노에 차서 뭉개버릴 수도 있었던 하수 같은 상대를 내가 받은 대로 돌려주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큰 도움을 얻게 되는 일도 있다. 고로, 너무 과하게 달릴 필요는 없다. 반복된 연습과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은, 말싸움에는 승패 또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표출된 분노는 최소한 내 속을 곪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