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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에 관하여

나의 영어 공부기(1)

*2012년에 썼던 글인데 <블로그 챌린지>하면서 다시 다듬었다. 티스토리에도 남긴다.

영문법 학문연구기

중고등학교시절 나는 '영어신동'이었다.(이 첫문장 때문에 페친으로부터 영어영재라는 별명도 얻었었다.ㅎㅎㅎ)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나름의 룰이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은 쉬운 축에 속하는 <맨투맨 기본영어>를 공부했고 영어 쫌 한다 싶은 애들은 <성문기본영어>를, 겁나 잘하는 애들은 <성문종합영어>를 가지고 공부를 했다. 당시에 그건 마치 계급과도 같았다.

당연히 나는 <성문종합영어>를 중학교 시절부터 이해하는 '영어신동'이었다. 나는 복잡하고도 긴 문장 안에서 S(주어) V(동사) O(목적어) C(보어)의 위치를 파악하여, 문장의 형식을 묻는 문제들을 완벽히 맞췄고 남들이 어려워하는 '독립분사구문' 문장도 척척 맞춰내는 능력자였다. (이런 작명을 만든 건 일본 영어 학자들인데 그들은 분사 구문에 주어가 생략되면 '독립'이라고 칭했던 듯 하다.)

따라서 내신에서 영어로 점수를 잃는 일 따위는 나와 무관한, 저급한 학생들의 문제였고 나는 초류향신전에 나오는 초류향 처럼 처음부터 강호의 강자로, 구름위를 날아 다니듯 영어 과목에서 항상 우위를 선점하던 시기를 한동안 구가했다.

단어왕 및 독해왕기

그러나 문득 나는 영어 시험은 잘 보는데 영어 신문이나 영어로 된 책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영한번역판 같은 잡지가 등장하면서 정작 문장을 이해하기는 커녕, 실제로 New England를 "새로운 영국"이라고 번역하는 수준의 학생임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영국...

'성문종합영어파'들은 괄호 안에 들어갈 변형, 이를테면 원동사를 주면 형용사형으로 변환할지 부사형으로 변형할지, 조동사+PP로 넣을지를 기차게 맞추는 능력자들이었지만 실제로 뉴욕타임즈나 미쿡서적들을 단 한 줄도 번역하지 못하는 도메스틱 시험 전용 인간이기도 했다.

뒤늦게 나마 그런 일본식 영어공부의 문제점을 간파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점점 영어교육 출판시장은 독해력에 치중한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그래, 일본식 영문법을 공부해서는 본토 영어를 이해할 수 없구나. 학교 시험문제를 다 맞춰도 영어 한줄 번역 못하니, 오호 통재라. 그런 낙심을 하던 차에 국가는 입시를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전환했다. 갑자기 바뀐 입학시험의 타이틀만큼이나 내용도 크게 바뀐 듯 했다.

내가 간파한 영어공부의 문제점을 국가도 간파했던지 영어 시험은 독해의 비중을 엄청 높였고, 거기에 덧붙여서 듣기시험도 5문제를 추가했다. 그런 변화에 발맞춰서 나를 비롯한 영어신동들이 그간 고집하던 성문영어에서 교재를 바꾸기에 이르는데, 그때 불같이 번진 교재는 바로 이찬승 박사의 '능률영어 씨리즈'와 '리딩튜터'였다.

고2 시절. 내년이 당장 입시인데 독해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문법 문제는 잘 몰라도 s를 붙여야 된다거나 ly가 들어가면 안 된다거나 하는 식의 수학문제 풀듯이 규칙성만 알면 문장을 못 읽어도 풀 수 있었지만, 독해는 일단 문장의 핵심 단어를 모르면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방학 내내 영어공부는 오로지 하루에 단어만 100개씩 외우기를 두 달 동안 입에 단내나게 해댔다.

본격 솰라솰라기(이른바 회화가능시기)

나는 급기야 고3 수능시험에서 일본식 영문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어만점의 영예를 누린다. 데헷.(하지만 입시에는 낙방하고 2지망 대학, 2지망 학과에 들어가게 된다..ㅠ) 그러나 대학을 들어가니 또다른 문제가 발견됐다. 캠퍼스 근방에서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서 정작 나는 외국인을 만나면 "암... 엄..." 수준으로 전혀 회화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중고등학교 6년을 영어를 연마한 학생들이 네이티브를 만나면 한 문장도 말 못하는 상황에 대해 학계는 여러가지 추론을 해왔다. 동방예의지국에 사대주의 정서도 있는지라 대화를 주도하기 보다는 경청해서 그렇다느니, 동양인들은 내성적이라 자기 표현에 약하다느니 나름 난리'blues'였다. 허나 그간 문제들을 극복해온 도메스틱 영어신동이 입장에서 볼 때 그런 학계의 추론들은 개소리였다.

영어에 6년을 헌신한 내 입장에서도 네이티브가 조금만 빨리 솰라솰라 말하면 80% 이상 안 들렸다.

"씨바... 뭐래는거야..ㅠㅠ"

수능 영어만점에 빛나는 내가 이정도니, 이건 국가의 명예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건 정말 국익에 반하는 행위가 아닌가.

이렇게 해서, 다시 영어신동의 '영어회화 학원 탐방기'가 시작된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사교육에 돈탕진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 쭈뼛거리며 학원에 들어가자 상담하시는 분이 물었다. "미(국)인 회화반을 원하시나요?"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예쁘면 더 좋죠." 그 때 그 언니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저넘은 시골에서 올라온 꼴마초임이 분명해'라는 눈빛..)

어쨌거나 나는 이 시기를 회화학원에 돈퍼주는 시기로 칭함과 더불어 이때를 갠적으로 내 멘탈에 대한 '미국문화강점기'로 칭한다. 왜 그렇게 영어에 집착했을까. 돌이켜보면 아마 그간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 더 그 끝을 보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 있다면 닥치는대로 뭐라도 할 거 같았다.

나는 학원 수업 외에도 회화반 선생이 자기네 친구들이랑 밴드연주한다는 미국인 클럽에도 따라가서 음악도 듣고 미쿡선생님 친구들과 술도 마셨다. 그때 술취해서 횡설수설하는 미쿡사람 첨봤다. 웃긴 건 취한 친구가 헛소리를 해대는 와중에도 나는 술주정을 명확히 듣기 위해 술도 안 마시고 귀를 쫑끗 세우고 있었던 기억도 난다.. 왓더F. 암튼 당시엔 내가 원어민의 친구이자 일행처럼 보이면 꽤나 흐뭇해하던 시기를 보냈다.

그 뿐이랴. 집에서는 비디오 틀면 자막 안보이게 TV 아래부분에 마분지를 붙여놓고 헐리우드 영화 눈에 단내나게 봤다. 미쿡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꿈도 꿨다. 언어가 무서운 게, 영어를 배우려던 나는 미쿡 문화를 통째로 거의 흡수하다시피했고 나는 버거킹 햄버거에 콜라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원어민의 삶을 동경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뼈속까지 친미주의자가 된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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