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들 배달음식 많이 시켜먹는다고 하는데 나만 반대로 집밥에 꽂힌 것 같다. 쌀 10kg도 금새 사라지고 2-3일에 한번은 장을 보는데 식재료 떨어지는 속도도 엄청나다.
아직까지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이 고되다거나 허드렛일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많이 해먹을수록 할 일도 더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고 그게 어느 정도 피곤하긴 하다. 예를 들어 장을 봐서 식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든 후, 차려서 먹으면, 그만큼의 식재료 쓰레기와 설거지를 동반하므로 최소 2끼를 정찬으로 먹으면 2회의 사이클을 돌면 은근히 할 일이 많다. 게다가 그 사이사이에 간식이나 과일을 씻어서 먹으면 점심저녁 먹다가 삼시세끼 1편 찍을 기세다.
다행히 기술의 발달로,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하고,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하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해주니 시간만 잘 배정한다면, 가사 PM으로서의 스케줄링만 잘 짜면 하루만에도 시간에 맞게 많은 허드렛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 사실 과거에도 손빨래로 악화된 내 어머니의 허리 디스크는 신형 세탁기가 고쳐주었듯 가사노동은 LG, 삼성 가전이 해방시켜준 것 같다.
요 며칠은 밥하는 루틴이 지겨워서 몇 번 외식을 했고, 왜 우리 엄마를 포함한 엄마들이 오늘 저녁은 한가하게 나가서 먹자고 매번 이야기했는지 1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한 이후의 많은 과정이 생략되는 외식은 마법과도 같다. 그 와중에도 외식으로 1인의 식비를 생각해보면 가성비가 참 안 나오는구나, 이런 건 내가 해도 더 잘하겠네 하는 내 엄마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읽거나 지켜본 모든 것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기가 정말 그 상황에 처해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말로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반대로 말실수로 구설수에 올라 욕먹는 많은 경우를 보더라도 거의 대부분 흘려 듣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물론 말은 중요하다. 대체로는 말로써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말 속에는 자기 확신에 찬 많은 논리들이 자기 몸과 손에 익지 않은 채 단단한 구조를 세우고 있다.
때때로 나는 예전보다 스케일이 많이 작아졌다고 느낀다. 하는 일이나 생각도 그렇고 쓰는 글도 그렇고, 주변 관계부터 삶의 반경도 그렇다. 한번도 전성기를 누렸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보다 적극적으로 스케일을 줄여갔다고 생각한다. 내 손이 잡히는 것, 내가 발딛은 곳, 그리고 그것이 한번의 경험이 아니라, 루틴한 무엇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성향이 됐다. 어떤 면에서 그게 나답지는 않다고 느끼지만, 삶의 후반에 내가 되고 싶은 무엇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