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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Notes

뇌 복제

뇌과학, 혹은 AI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레이 커즈와일처럼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부류도 있고 인간의 뇌를 복제하여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거나 철학적 고민을 하는 이들의 글들도 종종 접한다. 무거운 글을 쓰려는 건 아니므로, 몇 년 전에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에서도 짱구 아빠가 로봇으로 복제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갑툭짱.. 이건 너무 가벼운가.. 아무튼. 로봇 짱구 아빠는 정확하게 그의 뇌를 복제해서 만들었으므로 몸은 기계이지만 자신이 진짜 짱구 아빠라고 인식한다. 가족 만화임을 감안하여 이 내러티브는 후반에 짱구 가족이 위기에 처하자 레알 짱구 아빠에게 짱구를 부탁하고 자신이 몸을 던져 위기를 벗어나는 설정으로 뇌 복제 문제의 철학적 논제를 피해가지만 로봇 아빠의 생각과 행동이 내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종종 내가 죽지 않고 뇌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최근에는 이런 논의가 중2병이 아닌 좀더 구체적이고도 진지한 의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여전히 허공에 떠도는 이야기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만, 그 논의에서 내가 가장 걱정되는, 혹은 의미없게 느껴지는 대목은 내가 생물학적인 삶을 다하기 직전에 내 뇌를 복제하여 다른 기기, 혹은 다른 생명에게 옮기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자면 내 의식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나와 정확히 똑같이 생각하는 제2의 존재가 삶을 이어가고 주변 사람들이 그 존재를 나라고 인식하더라도, 그것은 또다른 나일 뿐 지금 내가 의식하고 있는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남은 자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이어지겠지만, 정작 죽음을 넘어서고 싶은 ‘나’라는 의식은, 단절(죽음)을 경험하고 현실세계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마치, 윈도우 오류가 생겨서 다시 설치한 윈도우가 이전의 그것이 아니듯, 아이폰11에서 아이폰12로 데이터를 옮겨서 똑같은 백업 아이폰이 되었더라도 넘겨진 데이터는 11의 것이 아니라 12의 저장매체에 각인된 또다른 복제데이터일 뿐이라는 말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월화수목금을 마친 토요일 아침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여러분도 이런 중2병 같은 생각들을 골몰할 때가 있지 않나. 아니면, 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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