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지적 관심분야가 철학과 사상, 그리고 진보 정치였다면 30대 내내 나를 관통했던 관심사는 단연 페미니즘이었다. 특히 정희진 선생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은 가부장제 안에서 양분을 받아 호흡하던 나에게 매트릭스의 빨간약 같은 각성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남녀의 문제를 떠나서 기성세대를 움직이는 가부장제 질서 자체에 대한 도전이자 자성, 그리고 실천의 길을 도모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40대를 넘기면서는 특별히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 편이고, 이제는 더이상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스스로 정체성을 부여하지도 않고 있다. 물론 경험적으로 깨달았듯, 초창기에는 남성 페미니스트는 편견없이 여성의 조력자이자 같은 편의 스탠스를 부여받았다면 점점 페미니즘마저 니네가 설명하려들고(맨스플레인), 올바른 페미니즘인지 아닌지를 '허락'하려 든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나아가 페미니즘과 배치되는 다른 입장에 서게 됐을 때, 여지없이 기득권 시스젠더 중년 남성의 한계라는 비판에서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을 직면했고, 매순간 그 사실을 잊지않고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이에 대한 나의 잠정적 결론은 그랬다. 더이상 청년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중년 남성으로서 나는 더이상 사회 이슈에 어떤 입장의 목소리를 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자주 비교되듯 보수가 철학과 논리마저 갖고 싶어하는 것이 과욕이듯 담론, 즉 말의 '힘'은 여성들에게 넘기고 현실세계에서 권력이 있건 없건 간에 그 권력을 향유하는 무리로 치부되는 나는 어떤 입장에 서지 않는 것을 반복해서 실행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을 영역에서조차 옳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표하고 그 입장에 상응하는 논리를 구구절절 열심히 썼던 것 같다. 그게 일종의 책임감일지, 일종의 공명심의 발로였을지, 혹은 그 중간 어디쯤엔가 내 속내가 있었겠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나는 꽤 많은 이슈들에 오지라퍼였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그렇게 40대 중반이 되고는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페미니즘이나 정치 이슈에 매몰되는 대화에는 마음이 떠나고 있다. 물론, 공과 사를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고, 나또한 어느 시점에서는 그런 대화에 매몰되었고 집중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도 했으므로 그 마음을 당연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는 '세상에 나쁜 개도 없고 사람도 없다'는 전제하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시시비비의 잣대없이 일단 그 사람의 팔자에 관심이 가게 됐고, 꿈해석과 융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중년 이후에 있어 남자에게는 내면의 여성성, 여자에게는 내면의 남성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시점에, 공적 젠더 갈등으로 인해 사적 영역에서까지 자신과 반대 성을 싫어하거나 혐오함으로써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익에서 멀어진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결국 이것들을 정리해보면, 나는 나이가 들었고 이슈에 대한 입장도 말하지 않으며, 게다가 그런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조차 밍숭맹숭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요즘 한국에서 진영을 나누거나 주변 사람들을 나누어 한쪽을 험담하는데 맞장구를 치지 않으면 정치적이라고 비난받거나, 박쥐 취급받기 십상이다. 딱 내가 그꼴인데,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까지 한다. 써놓고 보니 골때리지만 그게 내 상황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끝날 글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그렇게 정리되어 그냥 그대로 살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