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글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생각을 (마음 속으로만ㅋㅋㅋ) 했었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터 내 글에 대한 반성, 나아가 다수 글쟁이들을 보면서 글과 삶의 괴리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가 생기면서 글재주보다는 '삶'재주에 중심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기고)글을 안 쓴 지는 꽤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을 전혀 안 쓰고 있지는 않다. 요즘은 내 글은 아니지만 종종 남의 글을 다듬어 주는 일이 있다. 빈번하게는 회사 팀원 보고서를 수정해주거나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봐주거나 독서모임에서 독후감을 간단히 교열하는 것부터, 심각하게는 성희롱 문제로 가해자에게 사실 확인을 위한 의견서 초안을 보고 재작성하는 등의 글들을 다듬곤 했었다.
글이란 게 막상 자주 쓰지 않는 이들에게는 쓰는 일 자체가 어색하고 누구에게 어떤 의도(사적 감상기, 공적 시비가리기)로 쓰는지에 따라 그 스타일과 구조가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이것 자체가 고역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도움에는 흔쾌히 응했다. 어떤 경우에는 오자를 고치거나 인과 관계만 조금 바꾸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사람의 의도에 맞게 글을 완전히 새로 쓰기도 했는데, 그 과정이 복잡할 때는 종종 마치 내가 기고글을 쓸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곤 했다.
사실 예전같으면 이런 걸 거의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면, 내가 그 글을 썼다는(고쳤다는) 걸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때 내게 글이란 하나의 '명성'과도 같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속내를 드러내자면) 대외적인 글을 쓰는 건 최소한 나란 사람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글을 다듬으면서도 나를 주장할 수 없는 처지에는 놓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래서 어릴 땐 그런 부탁을 자주 고사했다)
하지만, 뒤늦게 그 존재감이라는 걸 '글'로 표현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되니 그냥 그건 하나의 작은 도움이고 주변 지인과의 관계의 연장일 뿐이었다.
더불어, 내 글에 대한 '가오'도 죽지 않았다. 내 손을 거쳐서 다듬어진 글들이 여기저기에 '꽂히는' 걸 보면서 역설적으로 나는 비공개적 존재감을 느낀다.ㅋㅋㅋㅋ 내가 아닌 타자를 통해서도 나의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다. 그걸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도 맘에 든다. (이런 말도 이번 한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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