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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2016. 8)

한참을 이슬람 문화, 역사에 빠져 살다가 뜬금없이 비잔틴제국의 역사 공부를 한참. 이삼십대에 엄지척하던 논객들의 글들에 시큰둥해지고 몇몇 운동가들에게 꽂히고. 글쓰기의 심한 무기력함에 빠지면서도 팟캐스트는 어정쩡하게 꾸준히하고 있고. 융과 라깡의 틀에 매료되었다가 흘러흘러 고혜경 선생의 꿈해석에서 다른 나를 보기도 하고.

뭐랄까. 몇년 사이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그 실체를 정확히 볼 수 없었다. 눈을 감고 길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사실 모든 게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작 스스로는 극도의 어떤 소외감마저 느꼈다. 

오늘 문득 나는 그 몸뚱아리를 붙잡았다. 그냥 퍼저있던 점들을 연필로 연결하듯 실타래가 풀리고 손 안에 구슬을 꿰어나가듯 나에게 자극을 주던 막연한 '추구'들의 실체를. 아마도 붙잡은 것 같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부연1.
한때 이슬람 문화에 꽂혔다가 비잔틴제국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끌리게 된 건, 아마도. 둘 모두가 한때 엄청난 문화적 중흥기를 맞이했다가 근대 시점에서 쇠퇴한 이야기가 나를 건드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건 내가 타문화, 소수자, 혹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제보다 화려한 명성의 몰락 이야기에 더 끌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건 여러 상황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내 집안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고 내가 더이상 삼십대가 아님에 대한, 일종의 하강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혹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요즘 트렌드에 편승해서 구식 영웅들의 현현-그러나 예전같지 않음-의 문화 코드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흐름에서 정작 흥미로운 건... 내가 내 스스로의 필요, 내면의 불편함, 자극에 대한 인지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적 동요들에 이전과는 다르게 나름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거다. 또한 그간 열정적이었던 것들에 대한 갑작스런 무료함, 질주하던 영역에서 멈춰섬. 불안하지만 곧 다시 어딘가로 뛰어야 한다는 강박에 대한 무시. 이런 멍때림의 상황을, 나름 즐기고 있다는 점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생각들이 머리 속을 돌고 돈다. 말로 풀어내기가 어렵지만 굳이 어설프게나마 표현하자면, '진정한 나를 성취하고 싶다'는 내 인생의 테제는 '원래의 나와 화해하고 싶다'는 이슈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 뭐,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201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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