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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단상 (2017. 8)

글쟁이 혹은 논객들의 글에서 중요하게 보던 부분 중 하나는 정확한 팩트 체크, 현란하면서도 방대한 참조 문헌, 그리고 맞춤법 같은 기본적인 능력이었다. 대체로 논객들은 활자화 되는 것에는 더욱 엄밀하고 적확한 글을 쓰고자 노력했는데, 그것은 자신이 죽은 뒤에도 글은 남을 것이고 존재보다 영원한 글로 자신이 평가될 것에 대한 나름의 '가오'를 잡기 위함이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자신을 '넘어서는' 글의 생명력에 대한 관점이라고 할 만 하다. 글은 이상적인 모습을 가져야 한다. 나의 사적 욕구나 편견, 좋지 않은 기호들이 스며들어 문장이 흐려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보다 객관적이고 엄밀하여, 혹여 누가 읽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글이라는 편견에 빠져들지 않도록 내 흔적이 남지 않는, 나를 넘어서는, 내 죽음보다 영원한 글이 되길 바라는 기대치 같은 게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류의 스탠스는, 콘텐츠가 귀할 때의 이야기가 되었다. 팩트, 이른바 용어나 숫자, 날짜같은 류는 인터넷만 연결되면 독자 스스로가 찾아볼 수 있다. 맞춤법? 워드프로세서나 블로그 서비스에서도 잡아준다. 참조 문헌은 목차만 읽어도 모자랄 분량의 리스트를 누구나 얻을 수 있다. 편견 없는 글을 추구하는 논객은 순식간에 신상이 털리고 그가 어디에 속했는지 왜 그 글을 쓰게 됐는지, 그 글 외에 무슨 생각을 해왔는지, 그의 치명적인 과오는 어떤 '사건'이었는지 뒤져보는 이들이 넘쳐난다. 저자의 활자화된 글 뿐만 아니라 그의 돌발 영상, 트위터 한 마디, 주변의 평판이 인터넷 쓰레기장에 처리되지 않은 채 종말까지 그의 주위를 배회할 것이다.

 

이런 '변화'는 글쓰기의 변화를 추동한다. 아니, 개인적으로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저자에게서 구원시키고 그 글 자체의 완벽함을 추구하던 방식이 아닌. 글 안으로 저자가 들어가야 하고 그의 편견과 말실수들이 도리어 글을 주관화시켜야 한다. 그 편견의 스탠스를 유지한 채 어떤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 완결된 글을 쓰기 위해 완벽함을 추구하기 보다 엉성한 상태라도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고 그것을 채워가는 과정으로써의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 그것이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넘어서는 글쓰기가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 사람을 넘어서는 로고스'는 죽었다. 사람이 멀쩡하지 않으면 글은 사람을 넘어설 수 없게 됐다. 도리어 '추락'하게 되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자기보다 망가진 글을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글쟁이 자신을 구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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