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에 대한 회의감을 넘어 무용론을 주장하는 글이 자주 보인다. ppss의 이 글이 대표적인 것 같다.(링크 글) 대체로 MBTI를 깔 때 사용되는 대표적인 논리는 크게 두 가지인 듯 하다. 첫째는 칼융조차도 지표화하기를 거부했던 분류체계였다, 혹은 융의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기초한 것이다라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서는 절반만 동의하고 싶다. 융은 그의 후반작업에서 무의식 탐구로 넘어가면서 어떤 심리 상태를 지표화하는 작업 자체에 회의감을 가졌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표화하지 않았을 뿐, 내향성과 외향성, 이성과 감정의 차이를 보이는 사람 유형 모두를 긍정하고 그것이 어느 하나로 극복(치료)되어야 할 질병으로 보지 않았다. 특히 낙천성과 적극성(E), 과학과 이성(T)을 극단적으로 선호하고 감정에 휘둘리는(F) 내향적인 인간(I)을 병자 취급하고 정신병원에 넣어 치료를 일삼던 그 시기에 융의 성격론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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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사실 이 점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자주 거론되는 것이 MBTI를 만든 두 여성(모녀)가 심리학 정식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야매로 만든 것이 대중화되어 우매한 이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전문적인 영역에까지 퍼졌다는 의견이다. 오히려 나는 이러한 악의적인 의견의 배후에는, 1930~40년대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학계가 비전문직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심지어 당시 심리학이라고 하면 지금은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프로이트의 이론이나 한참 무의식에 꽂혀서 이런저런 탐구를 하던 융학파나 그외의 이론 모두가 난립과 교정을 부단히 만들던 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신생의 비정형적 이론'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 기울어진 판에, 가정이나 지켜야하는 엄마와 그의 딸까지 끼워주지는 않았으리라 상상해본다. 이에 대해서는 이사벨 브릭스의 딸이 자신의 책 서문에서 인용한 두 여성의 이야기로 내 생각을 대신하고 싶다.(아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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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나는 임상적으로도 그렇고 MBTI의 기본 개념이나 두 여성의 고민이 담긴 손녀의 책을 통해 얻은 지식 자체로 보더라도, 이 지표를 긍정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MBTI의 한계가 있다. 나는 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현대인의 페르조나 관점에서 이 지표가 빛을 발하지만, 궁극적 내면을 탐구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한다. 갑자기 졸라 진지하게 쓰다보니 현타가 와서 여기까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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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성격의 재발견/ 서문 중에서>
이 책의 지은이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1897-1980)는 나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20년에 걸친 투병 끝에 끝내는 암에 굴복하고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의 일이다. 나의 어머니가 품었던 목표는 소박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욕망의 치열함이 그녀에게 이 책의 집필을 끝낼 때까지 버틸 힘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이사벨 마이어스는 심리학자의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융의 이론을 해석하고 쉽게 다듬는 작업에 자신의 인생 후반부를 몽땅 바쳤다. 건강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성격적으로 제 아무리 독특하다 하더라도 저마다 지극히 정상이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주변 사람들과 너무나 달라도 그건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독특한 방식이라는 점을 주입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서 경험하는 차이와 문제와 오해 중에서는, 대부분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수가 각자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법을 달리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방법이 다를 뿐이지, 결코 비정상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쓰이게 된 역사를 조금 언급하는 것이 유익할 듯하다.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이미 이사벨 마이어스와 그녀의 어머니 캐서린 룩 브릭스(1875-1968)는 16년 동안이나 융의 이론에 심취해 있으면서 그것의 대중화를 위해 나름대로 고민해오던 터였다.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많은 남자들이 산업 역군에서 빠져나와 군대로 들어갔다. 그러자 여성들이 남자 노동력을 대신하여 평소의 활동에서 벗어나 노동력으로 편입되었다. 이런 여성들 대부분에게는 중공업의 일터가 완전히 낯선 영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융의 성격유형 이론을 여성들에게 적용하면 도웅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여성들의 성격유형을 파악할수만 있다면 그때까지 한 번도 중공업 분야를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에게 성격에 어울리는 작업을 할당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면 전쟁수행 노력에도 이바지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들은 융의 이론에서 성격적 선호를 파악할 수 있는 테스트나 척도를 찾으려고 무진 노력했으나 허사로 끝났다. 그러자 그들은 스스로 그런 척도를 창조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를 위한 성격검사로 발전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심리학자나 계량심리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無)에서 시작해야했다.
그들이 자신의 관찰을 이해하고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에는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훗날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가 될 문항들을 1943년에 처음 공개했을 때, 그들은 엄청난 벽을 실감해야 했다. 학계로부터 이중의 반대에 봉착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심리학자가 아니었고 심리 연구에 어울리는 분야의 학위도 없었다. 심리 연구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심리학과 통계학 혹은 테스트 구성 등에 공식적인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는 학계와 심지어 그 당시 융 학파 학자들과 분석가들까지도 성격유형에 관한 융의 이론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현실이었으니 하물며 ‘자격을 갖추지 않은 게 너무도 명백한’ 무명의 두 여인이 융의 성격유형을 파악하겠다고 만든 질문지에 대한 반응이야 오죽했을까.
그리고 5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를 경험했거나 이에 대해 들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1994년에만 2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MBTI 테스트를 받았다. 그 덕에 융이 제시한 개념 중 상당수가 대중적인 어휘로 정착하게 되었다.
*MBTI 검사는 왜 완전히 무의미한가?
2017년 7월 26일 by devunt
https://ppss.kr/archives/2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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