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나 지인들에게 상담을 해주거나 조언하는 일을 좋아’했다’. 스스로가 다분히 오지랖이 넓어서이기도 했고 삶에서 노하우가 쌓이면 쌓일수록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는 행위 자체가 내 삶에 큰 의미부여가 됐다. 무엇보다 어느 시기에 우리나라 전체가 현자들의 상담과 조언을 갈망하는, 이른바 '멘토의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인플루언서들'이 판치는 시대라면 불과 10년 전후로는 멘토들이 판치는 시대였고 여기저기에서 토크 콘서트라는 형식의 행사가 매번 성황을 이루었다.
앞서 말했듯 나또한 잦은 상담과 조언을 즐기며 누군가의 멘토가 되길 소망했지만, 정작 그런 멘토들의 호황 시기에는 ‘다행히’ 그런 소망을 접을 수 있었고 지금도 전문 상담사로 직종을 바꾸지 않은 한 누군가에게 조언이나 멘토링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당시의 호황을 생각하면 나의 헛된 꿈을 단번에 접은 것은 참 훌륭하고 냉정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후후…)
당시에 우리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멘토들을 떠올려보면 몇몇 대표적인 이름들이 나온다. 안철수, 박경철, 유시민, 조국, 진중권 등이 그 대표적인 이들이고, 내가 속한 기독교 배경을 놓고 본다면 이제는 차마 언급할 수 없는 많은 교계 지도자, 설교자의 이름들이 떠오른다. 이런 이름들을 떠올린 게, 언급한 이들이 모두 가짜였다는 의미도 아니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전문적인 한 두 영역이나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의견을 들을 수는 있어도, 인생의 멘토라는 개념을 담을 특정한 개인은 지명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아주 이상적인 어른이나 멘토를 기대한다. 그 기대만큼 특정한 개인을 추앙하고 결국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놓고는 여러 의혹이나 사적인 문제들이 드러날 때 처음 애정을 가진 마음의 몇 배의 실망감과 악감정을 드러낸다. 대통령 임기동안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던 노무현 전대통령이 그랬고, 마치 드라마에서처럼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도청)해도 흠없고 선한 자로, 험한 세상에서 지친 청년들이 내심 기대고 싶게 만든 '국민 아저씨' 이선균 배우가 그랬다. 이제는 모두가 그 두 사람을 그리워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이나 관련된 사람들을 원망하지만, 만일 그들이 그 의혹 속에서 삶을 연명했다면 우리는 지금의 마음과는 달리 그들을 싫어하거나 한때 괜찮았던, 하지만 지금은 마음다해 덥썩 끌어안기에는 부족한 유명인 정도로 치부했을 것이다.
이렇게 특정인에게 삶의 진리를 물어보려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일단 유명해지면 그 대상의 주변을 탈탈 털면서 그가 다른 영역에서는, 혹은 시간이 지나면 별볼일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는 초단기 사이클 속에서 한사람 한사람을 대중 앞에 전소시키는 현대 사조를 나는 후기 멘토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멘토는 없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신화는 갈망하면서도 높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내 사랑 멘토’를 빠르게 불태워버리는 짧은 주기를 가진 시대인 셈이다. 이런 시대에 진정한 영웅은 더 심한 꼴을 보기 전에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목숨을 잃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 그들을 영웅으로, 진정한 멘토로 ‘박제’하기 위해 그들의 죽음을 추동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게 후기멘토주의 시대의 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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