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터진 해에 나는 돌연 더이상 책을 읽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가지고 있던 책들 대부분을 중고로 처분하고 남은 책들은 스캔해서 파일로 보관했다. 당시에 나는 책을 통해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이상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말하자면 그간 나는 책을 통해 인생의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 해에 그런 내 태도를 버렸고 한동안 진짜 책장에 있던 내 책들은 거의 사라졌다.
첫해엔 그럭저럭 그 상태가 유지되었지만, 이듬해부터는 다시 책을 조금씩 사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보다는 책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져서 책을 소장하려 한다거나 정독을 하고 좋은 문장에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남기지 않고 왠만하면 전자책으로 읽거나 종이책을 헐값에 사서 읽고 처분하는 식의 습관이 굳어졌다. 책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진 건 무엇보다 독서에 대한 내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예전만큼 진지하지 않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사는 철학, 사상, 인문학 서적에서 아예 실용서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글 읽는 재미가 있는, 문체나 서술 방식에 흡인력이 있는 책들로 변했고, 특히 최근에는 미술이나 음악, 영화와 같은 예술서들도 책으로 자주 읽었던 것 같다. 과거에는 그야말로 선비의 자세로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여유시간을 독서로 지루하지 않게 보내고 싶은 정도의 자세랄까. 아무튼 그렇게 다시 책들은 내게로 돌아왔고 내 책장은 이리 저리 모으고 산 책들로 다시 채워졌다. (그 얘기는 책장에 있는 대부분의 책들이 아직 읽지 못한 책이라는 말이다.)
오늘 다시금 책장의 책들을 보며 반성 아닌 반성을 했다. 빨리빨리 읽어서 잽싸게 처분하던가 아니면 다 읽지 못한 책들이 얼마 이상 쌓이면 더이상 책을 사질 말던가, 둘 중의 하나는 해야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 마음에 이르지는 못했다. 나는 관대하고 너그러운 성품이기에. 최근에는 공지영 선생의 신간과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한 이야기 관련 책, 그리고 오늘 구입한 독창적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돌려 읽으며 짜투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이것들(?)과 좀더 시간을 보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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