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공예절 중 가장 흥미로운 건 단연 '출입문 예절'이라 할 수 있다. 너무 흥미로워서 꽤 오랜동안 사람들을 관찰했고 이제 드디어 그들의 스타일을 범주화해보려고 한다. 보통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뒷사람이 문에 부딪히거나 문에 손이 낄 우려가 있어 뒷사람이 들어오거나 혹은 문에 손을 잡을 때까지 출입문을 손으로 잡아주는 게 의례적이지만, 특이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앞 사람이 문을 열면 빠른 걸음으로 자신까지만 통과하면 문이 닫힐 전도로 걸어들어가는 부류다. 주로 민첩한 동작을 구사할 수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 몸이 호리호리한 청장년이 이렇게 출입문을 지나다니지만 뒷사람은 또 아무렇지 않게 닫힌 문을 열고 출입문을 통과하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두번째는 뒤를 잠깐 쳐다보는 척하며 들어가는 부류다. 뒷사람을 볼 것처럼 돌아보지만 180도가 아닌 120도 근방을 스치듯 주시하면서 그냥 갈 길을 간다. 이럴 경우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만약 바로 뒤따라 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잡아줄 예정이지만 자신이 들어갈 때까지 출입문 앞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문을 잡아줄 시간의 여유는 없다는 표현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120도 이상 고개를 돌려서 뒷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데 있다. 대략 60-70%의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하는데 나는 이런 부류를 실속파 예절이라 평가한다.
세번째는, 내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부류인데, 출입문을 통과할 때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문을 힘껏 밀어서 일정 시간동안은 뒷사람이 문을 열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놓고 지나가는 부류이며, 주로 중장년 남성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 같다. 이런 경우 문이 열린 시간이 좀 애매한 경우가 있어서 뒷사람과의 거리가 좀 있는 경우는 오히려 뒤사람이 들어올 때 출입문이 닫히거나 반대로 사람쪽으로 밀려 있을 때도 있다. 또한 힘껏 문을 밀면 반대쪽 벽에 문이 부딫혀서 큰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 경우 흥미로운 부분은 뒤를 보지 않고 뒷사람에게 들어올 기회를 주겠다는, 계산된 플레이를 구사하는 그 마음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 영역에서는 보통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또 실제로 겪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느낌이 들 때도 많다. 보통은 뒷사람과 눈을 맞추고 문을 열고 기다리는 편이지만 가끔씩 뒷사람이 출입문으로 들어오지 않으면서 나를 쳐다보며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고, 그보다는 자주 있는 일인데 조금 뒤쪽에서 오던 뒷사람이 내가 문을 열고 기다리는 것이 신경쓰여서 일부러 뛰어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그때의 표정이 중요한데 처음에는 고마운 표정으로 살짝 웃다가 뛰다보면 굳이 뛰고 싶지 않은데 내가 문을 열고 있어서 뛰게 되어 정작 문앞에서는 기분이 별로인 것 같은 표정을 꽤 많이 접했다. 마치 '그냥 가, 나는 천천히 내가 문열고 들어갈게'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이런 경험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부류로 정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적고보니 이런 걸 생각하고 구구절절 적고 있는 나도 참 웃긴다는 생각에 현타가 잠시 왔지만, 글은 남겨둔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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