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책임감이 강하고 매사에 성실한 주변 후배들 혹은 지인들이 힘든 기색을 하거나 번아웃 증상을 보이면, 네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네 주변을 도울 수 있고 네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요즘 종종 꿈을 꾸면 해석을 하려다가 넘기는 일이 많은데 돌이켜 보면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야 하거나 여행지에 가서도 갑자기 자리를 옮겨야 하는 등 곰곰히 곱씹어보면 ‘이동’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몇년째 나를 둘러싼 내적 고민의 핵심은 ‘더이상 삶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었다. 차마 입밖으로 내기가 어려워서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매순간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내게 멀쩡하게 잘 살고 있으면서, 뭐가 아쉽다고, 복에 겨웠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런 마음 때문에 주변에 행복해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마음이 쓰여서 그런 오지랖을 부렸던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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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부터 줄곧 ‘이 삶이 즐겁지 않음’, ‘더이상 삶이 행복하지 않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 문제를 막연하게 ‘아, 사는 게 핵노잼이네..’ 이렇게 느낌을 툭툭 혼자말처럼 던져놓을 때와는 달리 ‘내가 정말 행복하지 않은가’를 놓고 고민해 본 결과,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책임과 의무에 대한 지나친 내적인 부담감과 무게감이 있고 그에 대한 백래시로, 고충과 지침, 벗어나고픈 마음 같은 게 내 일상의 행복을 희석시키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요즘 나는 소소하게 유튜브에서 본 레시피로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이 있고 전자 기기들을 사서 써보면서 갖는 만족감도 꽤 크다. 나아가 가족과 여행지에서 가졌던 즐거운 기억들. 함께 먹었던 음식들과 좋은 장소에서 나눈 담소들, 혹은 그런 여행 경험이 아니더라도 매일 회사일을 마치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 느껴지는 편안함이 나를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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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불행복’ 혹은 ‘무행복’(불행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으로)이라고 느끼는 이 지속적인 감정은 어떤 사실이나 현실을 말한다기 보다는 내가 균형을 잃고 기울어졌다고 느끼는 어떤 결핍이나 불충분한 요소로부터 기인한 감정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매사에 타자에게 맞춰주는 삶을 사는 내 일상적 태도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회사에서도 임원들과 후배들의 기대에 충실하게 사는 편이고, 대체로 그들이 좋다고 하는 일을 마치 내가 원래부터 원했던 일이었던 것처럼 하는 것이 몸에 익은 편이다. 집에서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내 욕구나 즐거움보다는 아내나 아이의 필요나 즐거움에 더 나를 맞추는 편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타인에 맞춰 살아가면... 이렇듯 정말 행복한 현실 속에서도 뭔가 하강하는 느낌, 무료한 기분, 삶에 기쁨이 급격하게 경감된 감정에 도달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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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유튜브를 보다보면 외국인들이 일관되고 통일성 있는 한국인 패션에 대해 흥미로워하는 상황들을 자주 접한다. 한번은 한국인이 외국 지인에게 한국사람들은 주변을 많이 의식하고 피해를 주거나 혹은 코디에 실패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해서, 뭔가 옷을 입을 때도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튀는 옷을 입을 때, 실패하거나 사람들에게 패선감각 없음을 지적당할까봐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고 설명하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그사람의 말에 화가 났다. 너무 맞는 말 같아서 더 화가 났고 나또한 그렇게 실패하지 않으려고 무채색의 옷을 입는 것이 생각나서 갑자기 마음이 상했고 더 나아가 옷 문제가 아니고 내 삶 전체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단순히 옷입음의 이슈로 나에게 들리지 않았기에 더 화가 났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말 나는 좀 변해야겠구나, 내가 내 감정을 돌봐야겠구나, 남에게 훈수 둘 때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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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시 새해인데 올해는 행복하면서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다고 내가 과거의 성공 경험을 가져다 준 이 태도를 단번에 바꿀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내속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이 변화의 갈망에 응답해야겠다. 주변 누군가에게 말했듯 내가 즐겁고 행복해야 내 주변을 도울 수 있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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